[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7박8일 협상 뒷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하루 숙박료 164만원 ‘황금 우리’ 갇혀 커피-화이트보드 놓고 밤샘 줄다리기

연이은 밤샘, 끊임없이 돌아간 커피 기계, 양측 협상단이 잠정 합의 사항을 써 놓을 때 애용한 낡은 화이트보드, 세 차례 짐을 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7박 8일간 치러진 이란 핵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기까지 스위스 로잔의 초호화 호텔 보 리바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자 신문 톱기사로 협상 뒷이야기를 자세히 전하며 “매일 아침식사 장소에 나타난 대표단들이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처럼 늘 지친 몰골이었다”고 보도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협상 타결 전날인 1일 ‘얼마나 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두 시간”이라고 말하며 “매우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케리 미 국무장관도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취재진도 힘들겠지만 우리는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스타는 협상단을 ‘황금으로 된 우리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협상장이었던 보 리바주 호텔도 화제에 올랐다. 이 호텔은 1861년 세워진 유서 깊은 곳으로 스위트룸의 하루 사용료가 1500달러(약 164만 원)에 이른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 디자이너 코코 샤넬, 은막 스타 메릴린 먼로 등이 애용했다. 1996년 이 호텔에서 약 넉 달간 머무른 모부투 세세 세코 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은 숙박을 포함한 각종 경비로 무려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썼다.

협상에서 중요 기능을 한 소품으로는 ‘화이트보드’가 관심을 모았다. 양측 대표단은 화이트보드에 주요 합의내용 및 숫자를 영어와 페르시아어로 적었다고 한다. 일부는 화이트보드 전용 펜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잘 지워지지 않는 일반 펜으로 기밀사항을 적었다가 이를 지우느라고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미국 대표인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도 어디를 가든 항상 이 화이트보드를 들고 다녔다고 NYT는 전했다.

당초 예정됐던 협상 마감시한인 지난달 31일이 다가오면서 양측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특히 시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이란 대표단과 달리 속히 미 의회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케리 장관의 부담이 심했다. 협상 중 세 차례나 짐을 싼 뒤 “이럴 거면 바로 귀국하겠다”며 이란 측을 압박했다고 한다. 그의 참모는 “케리 장관은 언론이나 반대파로부터 ‘몇 달 동안 그렇게 난리치더니 겨우 이 정도야? 더 잘할 순 없어?’라는 비판에 시달릴까봐 늘 초조했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협상으로 한때 ‘퇴물’ 취급을 받았던 케리 장관이 급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전 라이스 미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 등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젊은 측근에게 밀린 케리 장관이 유령 취급을 받으며 교체설에 시달렸지만 이번에 강한 인상을 남겨 정치적 입지를 회복했다고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은 전 민주당 대선후보이자 당 원로인 케리 장관에 대해 평소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것이 그가 국무장관 직을 유지하며 이번 협상을 주도할 수 있었던 원인”이라고도 전했다. 케리 장관은 협상 타결 직후 “이란 문제를 전쟁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외교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줘 기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간의 물밑 ‘편지 외교’도 협상 타결에 큰 역할을 했다고 2일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제네바에서 협상이 시작될 무렵 하메네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협상 타결을 촉구했으며 하메네이도 바로 답신을 보내는 등 두 사람이 물밑 교감을 이어왔다고 덧붙였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