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클라우드란… 헤어진 자식 10년만에 되찾은 기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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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맥주 출신 롯데주류 임원 3인방

동양맥주 출신으로 현재 롯데주류에서 ‘클라우드’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김원국 생산본부장과 우창균 마케팅부문장, 이종훈 경인영업부문장(왼쪽부터). 이들은 “한때 맥주 시장 1등 기업에 몸담았던 경험을 발판삼아 클라우드를 세계 최고 수준의 맥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동양맥주 출신으로 현재 롯데주류에서 ‘클라우드’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김원국 생산본부장과 우창균 마케팅부문장, 이종훈 경인영업부문장(왼쪽부터). 이들은 “한때 맥주 시장 1등 기업에 몸담았던 경험을 발판삼아 클라우드를 세계 최고 수준의 맥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글쎄, 헤어진 자식을 10여 년 만에 다시 품에 안았을 때의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요?”

우창균 롯데주류 마케팅부문장(54·상무)이 운을 뗐다. 옆에 있던 이종훈 경인영업본부장(53·상무)과 김원국 생산본부장(50·상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헤어진 자식’이란 바로 맥주 ‘클라우드’를 일컫는 말이다.

클라우드는 지난해 4월 국내 맥주 시장에 뛰어든 롯데가 야심 차게 선보인 첫 제품이다. 풍부한 거품과 진한 맛을 앞세워 올 2월 말까지 400만 상자(1상자는 330mL들이 30병)가 팔렸다. 생산량 기준 점유율은 3% 수준이지만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10% 안팎의 판매 점유율을 보일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우 상무와 이 상무, 김 상무에게 클라우드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 업계 1위에서 내리막을 걷기까지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동양맥주 출신이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동양맥주는 1990년대 초 맥주 ‘OB’를 앞세워 국내 맥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프로야구단 이름도 ‘OB베어스’일 정도로 그룹 내에서의 입지도 탄탄했다.

“업계 1위라는 자부심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어요. 술자리에선 항상 에티켓을 지키라고 교육 받았고 술 못 마시는 것은 용서가 되지만 술주정이나 추태는 용서가 안 됐지요.”(김 상무)

공고했던 1위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초부터다.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고가 발단이었다. 불똥은 같은 그룹 계열사인 동양맥주로도 튀었다. 당시 대구지점 소속이던 이 상무는 판촉활동을 나갈 때마다 고객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었다.

70%를 웃돌던 점유율은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 페놀 사고 이듬해인 1992년에는 진로쿠어스맥주가 ‘카스’를 내세우며 시장에 뛰어들고 조선맥주가 1993년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동양맥주는 1995년 사명을 오비맥주로 바꾸고 ‘OB아이스’ ‘OB스카이’ ‘OB사운드’ 등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러나 분위기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두산그룹은 1998년 벨기에 맥주회사 인터브루(현 AB인베브)에 오비맥주 주식 절반을 넘기기로 했다. 사실상 맥주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은 것이었다.

“영업 등 조직 대다수가 인터브루 쪽으로 넘어가고 일부만 두산주류BG에 남았지요. 식당을 돌며 우리 맥주를 마셔달라고 홍보하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이 상무)

○ 다시 이어진 맥주와의 인연

이렇게 끊긴 맥주와의 인연은 2010년 다시 이어졌다. 2009년 두산주류BG를 인수한 롯데그룹이 이듬해 맥주 사업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합 주류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기존의 소주, 위스키 외에도 맥주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룹 내부의 판단이었다.

세 사람은 신제품의 기획과 제조, 판매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우 상무는 태스크포스(TF)에서 신제품을 기획하며 10여 년 전의 경험을 끄집어냈다. “개인적으로 OB아이스를 참 좋아했는데, 고객들이 뒤에 오는 쓴맛을 꺼리는 바람에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요. 이런 실패의 경험이 새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큰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우 상무)

김 상무는 독일의 최고급 생산 설비를 수소문하며 최고의 맥주를 내놓을 준비를 했다. “2010년 당시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수입된 맥주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이처럼 다양해진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놔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습니다.”(김 상무)

이런 노력 끝에 나온 제품이 바로 클라우드다. 영업을 책임지는 이 상무는 “식당을 돌며 우리 맥주를 권하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뭉클했다”고 말했다. 기쁨도 잠시,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모든 마케팅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다. 결국 조용히 개별 고객들을 만나 맛을 평가받는 방향으로 마케팅 계획을 전환했다.

다행히 소비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진한 맛의 클라우드는 시원한 청량감을 강조하는 국산 맥주의 틈바구니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롯데주류는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달 초부터 연간 20만 kL를 생산할 수 있는 제2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클라우드에는 맥주 시장 1등 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실패와 도전을 거듭했던 우리 같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답니다. 앞으로 클라우드를 수입 맥주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제품으로 키워낼 생각입니다.”(우 상무)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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