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재열]근시안 사회, 누구와 우리 미래를 고민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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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전세살이 설움은 이사할 때 확인된다. 계약 기간이 끝나는 2년마다 짐 싸는 일이야 감내할 만한 번거로움이지만, 친구들과 헤어지는 어린 자식의 축 처진 어깨를 보는 것은 부모에게도 아픔이다. 자주 옮기는 것은 아이나 나무에게 못할 짓이다.

대학의 학장이나 처장 임기는 2년이다. 보직 경험자들은 말한다. 1년 지나 비로소 업무가 파악되고, 2년쯤 되어야 어떻게 비전을 만들고 실천할지 가늠이 된다고. 그래서 거기서 멈추면 대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영원한 아마추어 조직이 된다.

그런데 역대 장관 임기는 2년을 훨씬 밑돈다. 주요 부처 장관 재임 기간은 박정희 정부 시절 19.4개월로 최장이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11.4개월에 불과했다. 경제장관들 임기는 14개월, 교육장관들은 1년 남짓이다. 이나마 개선된 것이다. 조선시대 관료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의 장관에 해당되는 육조 판서들의 평균 임기는 5.6개월,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판윤의 임기는 5.4개월에 불과했다.

국가 정책을 명 짧은 장관들이 맡을 때 미래 비전을 정교화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지식과 경험도 축적되지 않는다. 디테일한 것을 챙겨 임기 내 성과를 내려는 장관들이 많아질수록 누적된 장기 효과는 부정적이 되는 ‘노력의 역설’이 발생한다. 생색나지 않는 난제 해결은 후임에게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도 성행한다.

매번 발표된 소소한 개선책들이 수십 년 쌓인 결과 내성 강한 돌연변이 괴물로 변한 입시경쟁은 대표적 사례다. 단순한 틀을 일관성 있게 지킨 미국이나 일본의 입시가 오히려 안정되고 적정 수준의 대학진학률을 유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도 문제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탈산업화를 경험하는 한국이 겪는 문제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이며 고질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청년실업, 통일 문제 등 모두 일관성 있는 장기 처방과 근본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난제들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은 임기 내 성과를 낼 묘안에 매달린다. ‘재미 좀 보았다’는 수도 이전, ‘경제성장의 비방(秘方)’이라는 대운하 건설, 미래를 저당 잡은 ‘공짜 복지’ 등은 모두 근시안적 한 방 공약이다.

더구나 단임제 아래에서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하는 순간부터 ‘미래 권력’으로부터 호시탐탐 거리두기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같은 정당이 재집권해도 이전 정권의 것은 흔적 지우기의 대상이 되니 아무리 좋은 정책도 지속되기 힘들다.

고위 공직자에게 긴 임기를 보장하지 못한 이유는 자리 나눠주기와 투명성 부족 때문이다. 챙겨야 할 인물이 많아질수록 보직 순환의 속도는 빨라졌고, 임기는 짧아졌다. 방산비리로 구속된 해군참모총장들의 사례에서 보듯 이권을 둘러싼 부패의 가능성이 크다 보니, 조직자원의 통제권을 가진 이들의 임기를 짧게 하는 것이 유착의 가능성을 줄이는 대안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한국 대학에 불고 있는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의 모델이 된 데릭 복 교수는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20년간 하버드대 총장에 재임하며 비약적 대학 발전을 일궈냈다.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일류국가로 일구고 지난달 서거한 리콴유는 1959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31년간 총리를 지냈다. 모두 현대판 군주라 할 만하다.

전통 군주제의 일관성을 대체할 현대적 장치는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과 장기적 정책지향을 가진 정당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장관 임기 못지않은 짧은 주기로 보직 순환 중이고, 백년정당이 되겠다는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헤쳐 모이다 보니 평균 수명 2년 남짓한 조립식 이동 캠프가 되었다.

국회에 미래연구원을 설립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간 총리실 산하의 연구회에 소속된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은 각 부처 이기주의에 포획되어 진정한 종합 미래연구기능을 잉태하지 못했고, 전 정부의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실험은 단임제의 한계 속에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스럽다. 정책적 일관성 없는 정당들 간 정파적 다툼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김영란법 처리에서 보여준 야합의 정치에 우리 미래가 휩쓸리지 않을까 해서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단임제#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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