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유언장 만든 조카… 아들로 둔갑한 사기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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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없이 홀로 살던 15억 재산 할머니 숨진 뒤…
5촌조카, 문서 위조해 부동산 꿀꺽… 또다른 일당은 예금 몰래 빼내가
조카, 전재산 가로채려다 범행 들통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한 선우모 씨(66)는 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내의 식당이 망하면서 ‘빚쟁이’가 됐다. 빚이 1억여 원에 이른 2007년 12월 월남한 당고모 선우모 씨(당시 88세)의 사망 소식이 들렸다. 슬픔보다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 없이 홀로 살아온 당고모에겐 재산을 물려줄 상속인이 없었다. 당고모는 서울 종로구 일원에서 삯바느질로 돈을 모은 뒤 사채업을 통해 15억 원을 모은 ‘알부자’였다. 법정상속인은 4촌 이내로 제한되기 때문에 선우 씨는 당고모의 재산을 가로채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2008년 5월 지인에게서 소개받은 A 변호사사무실 사무장 김모 씨(70)와 공모해 당고모가 생전에 자신의 빚에 연대보증을 선 것처럼 ‘대물변제(현금 거래 채무를 부동산으로 갚는 행위) 약정계약서’를 위조했다. 위조문서를 법원에 제출한 선우 씨는 당고모 소유의 종로구 주택을 대물변제 방식으로 처분해 4억5000만 원을 챙겼다.

욕심은 당고모의 은행예금으로 향했다. 선우 씨는 당고모의 ‘상속인’이 되기 위해 “모든 재산을 5촌 조카에게 준다”는 ‘가짜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는 2012년 3월 유언집행자선임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언집행자로 지정된 변호사가 고인의 재산을 살펴보던 중 ‘아들’이 예금을 인출한 내용을 발견했다. 고인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 변호사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망한 당고모의 예금은 이미 다른 사기꾼 일당이 빼돌린 뒤였다. 경찰에 따르면 강모 씨(66)와 최모 씨(74), 최모 씨(57) 등은 2009년 4월 서울의 한 구청에서 고인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발급받은 뒤 두 최 씨를 고인의 아들로 위조했다. 이들은 위조 증명서를 이용해 시중은행 3곳에서 고인의 예금 8억5100만 원을 인출했다. 경찰은 부동산을 처분한 김 사무장이 고인의 재산 정보를 강 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강 씨 일당이 빼돌린 예금 외에 고인의 부동산 거래 명세를 추적했고, 결국 선우 씨의 범죄 행위까지 찾아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기와 공·사문서 위조 행사 등 혐의로 강 씨와 김 사무장을 구속하고 선우 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고 환수 대상 재산은 관리자가 없기 때문에 ‘먼저 갖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으로 달려든 것”이라고 말했다.

유언집행자인 변호사는 강 씨 일당에게 돈을 인출해 준 은행 3곳을 상대로 예금반환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모두 승소했고 1곳과 2심을 진행하고 있다. 은행 측은 서류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원본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유언장#조카#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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