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음식에 대한 온갖 글·그림·사진들 ‘훌륭한 콜라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모던 아트 쿡북/메리 앤 코즈 지음/황근하 옮김/340쪽·1만8000원/디자인하우스

다섯 번째 장 ‘육류’에 삽입한 마네의 ‘정물: 소고기 조각’(1864년). ‘리히텐슈타인의 소고기 구이’ 조리법을 병기했다. 디자인하우스 제공
다섯 번째 장 ‘육류’에 삽입한 마네의 ‘정물: 소고기 조각’(1864년). ‘리히텐슈타인의 소고기 구이’ 조리법을 병기했다. 디자인하우스 제공
피망. 세로로 쪼개 꼭지 부분을 잘라내고 씨를 뺀다. 어느 정도 굵기로 썰까. 어떤 시점에 얼마만큼 냄비에 넣을까. 넣은 뒤 얼마나 더 끓일까. 한 땀 한 땀 고민할 수도, 무심히 칼질한 뒤 대충 집어 던져 넣을 수도 있다. 정해진 답은 없다. 같은 재료로 내놓은 결과물은 그중 한 마디의 결정에 따라 무수히 바뀐다. 채소, 칼, 도마, 냄비 대신 안료, 오일, 붓, 캔버스를 놓고 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미술은 언제나 요리 곁에 있다. 책 서문 앞에 제시된 첫 그림인 세잔의 ‘생강 단지와 가지가 있는 정물’(1894년)은 10대 때 동네 미술학원에 놓여 있던 사과접시를 떠올리게 한다. 표현의 대상물로 삼기에 미술이 요리 곁에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재료의 특성을 어느 정도 세심히 파악했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점, 소비 주체가 개별적으로 축적한 경험의 폭과 깊이에 따라 반응의 양태가 천양지차로 갈린다는 점에서, 미술과 요리는 닮았다.

서문을 뛰어넘고 중간부터 읽기를 권한다. 표지 이미지는 리히텐슈타인의 ‘파란 생선’(1973년)이다. 네 번째 장 ‘생선’에 다시 삽입한 이 그림 옆에 쓰인 글은 이렇다. “리히텐슈타인의 석쇠에 구운 줄무늬 농어. 10∼12인분. 농어 커다란 것 1마리(2.2∼3.2kg). 비늘을 벗기고 살점을 발라낸다(머리와 꼬리는 남긴다). 신선한 타임 1큰술, 파슬리 가지 5개, 얇게 저민 레몬 3조각, 소금 1큰술, 후추 반큰술, 버터. 생선에 타임 파슬리 레몬 소금 후추 버터를 바른 뒤 석쇠에 올려 중간 불로 양면을 20분간 익힌다.”

비교문학 전문가인 지은이가 이 책을 온전히 ‘써냈다’고 하기는 어렵다. 육류, 생선, 채소, 빵과 치즈 등에 대한 온갖 산문, 시, 조리법, 그림과 사진을 골라 묶었다. 한국의 평범한 샐러리맨 주방에서 실용성을 찾기는 어렵겠으나 꼴사나운 허영의 기색은 없다. 요리는 팔 할이 재료다. ‘달걀’ 장에 인용한 헨리 제임스는 “내 생애 최고의 식사를 했다. 그저 삶은 달걀과 빵, 버터였을 뿐인데. 소박한 재료의 품질 덕이었다”고 썼다. 맥락 없이 이것저것 갖다 붙인다고 모두 ‘콜라주’는 아니다. 이 책은, 훌륭한 콜라주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모던 아트 쿡북#세잔#리히텐슈타인#피카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