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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죽은 연인을 먹으며 존재 증명… 불행해도 함께 있자는 사랑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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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죽은 연인을 먹으며 존재 증명… 불행해도 함께 있자는 사랑도 있죠”

박훈상기자 입력 2015-04-04 03:00수정 2015-04-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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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최진영 지음/180쪽·8000원·은행나무
‘구의 증명’을 쓴 최진영 작가
소설가 최진영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2010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소설가 최진영(34)의 두 가지 상상.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그의 살을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다. 끔찍하거나 엽기적이기는커녕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그의 육신은 불태울 수도 땅에 묻을 수도 없다. 늘 나의 죽음보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의 죽음이 더 큰 공포다.

작가는 두 가지 상상을 하나로 버무렸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구의 증명’이다. 소설 속 ‘구’(남자)와 ‘담’(여자)은 처음 만난 여덟 살 때부터 서로 호감을 느꼈다. 가정 형편이 불우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했고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성인이 된 구가 부모가 남긴 빚 때문에 쫓기다 죽는다. 담은 죽은 구를 자신의 집으로 옮겨와 먹는다. 빠진 손발톱부터 성기까지 야금야금.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혼자 남은 자의 절절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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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작가를 만났다. 담이 시신을 먹은 까닭부터 물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 그들밖엔 보이지 않았어요. 담이 구를 따라 죽으면 둘은 아예 세상에서 없는 게 돼요. 담은 구를 먹으면 피와 살이 되니 오래 살 수 있고 자신 안에 구를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먹으면서 구의 존재를 증명한 거예요.”

설정은 충격적이지만 읽어 보면 호러 소설처럼 끔찍하고 괴기스럽다기보다 슬프고 애잔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먹는 담을 떠올리며 사랑, 삶, 죽음 같은 흔하게 쓰는 단어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라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사랑이 짠하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내내 인디밴드 ‘9와 숫자들’의 ‘창세기’를 반복해서 들었다고 했다. “그대는 내 혈관의 피/그대는 내 심장의 숨/그대는 내 대지의 흙/그대는 내 바다의 물”(‘창세기’ 가사 일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크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연인이 된 관계는 결속력이 다르다. 씨실과 날실이 얽힌 것처럼”이라고 했다.

소설에서 둘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드는 장치는 빚이다. 대부업체는 지옥이라도 찾아가서 돈을 받아내려 한다.

작가는 “요즘 세상에 빚내서 학교에 다니고 집을 사는 모습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내가 보기엔 활활 타는 불덩이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이다. 지금 생활과 미래를 저당 잡히는 빚 권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도 녹였다”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꼭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노력을 했으면 해요. 구를 먹는 담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된다면 타인의 불행을 예민하게 여기는 감각이 살아있는 거겠죠. 그런 예민함이 있으면 살면서 고통을 느낄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그 예민함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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