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경제적 실익’ 얻고… 美는 ‘핵무기 확산 억제’ 챙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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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 타결/합의 내용과 과제]
밤샘 협상 끝에 12년만에 극적 타결

장장 12년 만에 이뤄진 극적 합의였다. 스위스 로잔에서 진행된 밤샘 협상이 1차 마감 시한을 이틀이나 넘기면서 이어질 때는 “이번에도 역시 물 건너가는구나” 하는 비관론이 지배했었다. 그러다 2일 전격적인 잠정 합의안이 나오자 국제사회는 “미국과 이란 현 지도부가 국내 강경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든 결실을 내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로 역사적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합의안을 조목조목 뜯어보면 미국과 이란은 각자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거나 적어도 감시하는 여러 수단을 갖추는 실리와 함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영구적으로 풀지는 않았다는 명분도 챙겼다.

이란 역시 비록 조건부이긴 해도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점거 이후 30여 년간 계속된 경제제재에서 풀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설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실리를 챙겼다. 그러면서도 자체 핵활동을 어느 정도 보장받아 나름대로 ‘핵주권’을 지켰다는 체면을 세웠다.

그래도 어떻든 합의안 자체는 이란이 예상보다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만큼 이란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절박감이 컸다는 방증으로도 보인다.

이번 협상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현재 2, 3개월로 추정되는 이란의 핵개발 ‘브레이크아웃 타임’(핵무기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물질을 얻는 데 필요한 시간)을 다양한 형태로 제한해 1년 이상으로 늘렸다는 점이다. 미국이 원했던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제한 형태는 크게 ①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초기 모델만 남기는 형태로 감축하는 것 ②농축우라늄 재고를 감축하는 것 ③플루토늄 생산을 억제하는 것 등이다.

이란은 협상 초기 현재 가동 중인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1만9000기를 1만 기 정도로 낮추자고 했다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6000기 정도로 더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1세대형 초기 모델인 6104개만 남기는 데 합의했다.

그러면서 향후 10년 동안 나탄즈 한 곳에서 초기 모델 원심분리기 5060기를 상업용 우라늄 농축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다만 이곳 1000기의 신형 모델은 10년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통제한다.

아라크 중수로와 포르도 지하 핵시설은 연구용으로 쓰겠다는 이란 쪽 입장이 반영됐다. 아라크 중수로는 플루토늄 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경수로로 바뀌며 중수로 원자로는 폐기돼 국외로 반출되고 사용후 핵연료 역시 원자로의 가동기간(약 30년)에 이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서방이 그동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포르도 지하 핵시설은 핵물리학 연구센터로 바뀌며 이곳에 있던 원심분리기 1044기도 연구용으로만 사용된다.

유엔 산하 IAEA 사찰에 관한 합의도 주목할 만하다. IAEA는 앞으로 이란의 모든 핵시설은 물론이고 우라늄 광산까지 25년간 정기 사찰을 할 수 있게 됐다. 또 우라늄 채광부터 농축, 사용후 핵연료 저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과 시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매일 감시할 수 있다. 다만 핵물리 과학자에 대한 사찰 부분은 제외해 이란의 요구가 관철됐다.

이란이 예상을 뛰어넘는 양보를 한 대가로 얻은 것은 경제제재 해제다. 협상이 타결되는 즉시 제재가 영구적으로 해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제재는 물론이고 프랑스가 강경하게 반대했던 유럽연합(EU)과 유엔 제재까지 한꺼번에 풀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 이란으로서는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일정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받은 점도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국내적으로 ‘핵주권’을 지키고 추후 핵개발의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이번 잠정 합의안이 핵폭탄 제조가 목적인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국제적인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반발을 부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번 협상은 ‘절반의 합의’에 불과하다. 향후 6월 30일까지 핵심 쟁점들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치열한 수 싸움을 또다시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란 측이 요구하는 신형 원심분리기의 제조 및 사용 범위, 과거 이란이 군사용으로 실시한 핵개발에 대한 의혹 해명 등 세부적으로 다뤄야 할 내용이 많이 남아 있다.

미국 의회 등이 이 문제를 걸고넘어질 가능성이 크다. 3개월 동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최종 협정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킬 정치적 쟁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로하니 대통령은 의회의 반대를 염두에 두고 국민투표까지 언급했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공화당을 의식해 대통령의 권한을 모두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대세를 되돌리기 어려운 하나의 역사적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이란#핵협상#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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