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기업이 3대까지 건재하는 장수기업 비율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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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2위 은행인 방쿠이스피리투산투(BES)는 지난해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2014년 상반기 순손실이 35억8000만 유로(약 4조3000억 원)에 달한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기업 지배구조 하에서 부실 여신을 늘린 게 화근이었다. 재벌가문의 경영에 대한 비난이 심해지자 결국 창업자의 증손자였던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에서 물러났고 포르투갈 정부는 BES에 49억 유로(약 5조8000억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BES 사태에서 드러나듯, 지배구조와 리더십 승계는 가족기업의 약점이며 자칫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미국 컨설팅 업체인 가족기업연구소(Family Business Institute)에 따르면 가족기업이 2대까지 생존하는 비율은 전체의 30%, 3대까지 건재하는 장수기업 비율은 12%, 4대 이상까지 살아남는 초장수 기업 비율은 3%에 불과하다.

가족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단적인 예로 미국에선 전체 노동자의 60%가 가족기업에 고용돼 있다. 만일 가족기업이 핵심 인재 관리와 차세대 리더 양성 및 승계를 효과적으로 진행한다면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로 인재관리에 힘써 장기간 번영을 누리는 모범적 가족기업도 많다. 글로벌 인재관리 컨설팅 기업인 이곤젠더 경영진이 201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HBR KOREA) 4월호에 기고한 ‘위대한 가족기업의 리더십 교훈’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좋은 지배구조 관행을 구축하라

가족기업들이 영속하려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사회에 감독권을 부여하는 등 좋은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경영자가 자율성을 갖고 의사결정하기 힘든 상황이거나 오너가문의 구성원들이 경영진에게 알리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모으기 어렵다. 좋은 지배구조는 최고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며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가족기업들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다. 영국의 소비자기업에서 일하는 한 전문경영자는 “우리 회사는 소유와 경영의 경계를 명확히 규정한 공식적인 지배구조 체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미래 리더를 발굴하라

오너가(家) 내부든 외부든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우선 오너가 사람들을 능력 있는 경영자로 키우기 위해선 젊은 시절부터 순환보직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보도록 해야 한다. 풍부한 경험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고위직을 맡겨서는 안 된다. 또 중책을 맡길 때에도 북미영업총책임자, 중국현지법인장, CEO 보좌처럼 다양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반면 외부에서 인재를 발굴할 때, 특히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할 요소는 ‘가치관’이다. 물론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나 조직개발 능력, 리더십 등 CEO로서의 기본적 역량과 잠재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전문 경영인의 가치관이 가족기업이 추구하는 비전과 같은지 여부라는 게 이곤젠더의 주장이다. 외부 인재가 가족 기업에 들어왔을 때 갈등 없이 회사를 이끌어 나가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데, 이는 가치관과 비전이 같은 때 가능하다. 실제 인도의 한 소비재기업 오너는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면서 과거 경험이나 역량보다는 가치관에 주목했다. 이 기업의 오너는 “외부에서 CEO로 영입한 사람은 이사회가 서면으로 요구한 자격 요건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우리 조직 문화에 딱 부합하는 사람이고, 그것이 직무 관련 스펙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체계적인 CEO 승계가 필요하다

모든 대기업의 최대 위협은 CEO 승계의 실패다. 미국의 유명 경영사상가 짐 콜린스도 한때 세상을 호령하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던 위대한 기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CEO 승계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이곤젠더가 선도적인 가족기업 50곳을 분석한 결과, CEO 승계 시 후보자가 단 한 명뿐인 기업이 전체 표본 중 30%에 달했다. 또한 3곳 중 2곳은 후계자 선정 과정이 적절치 않았다. 대개 가문의 수장이 직관에만 의존해 후계자를 선정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후계자 선정이 순전히 ‘운’에 의해 좌우된 사례도 많았다. 스페인의 한 가족기업의 경우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자신이 신뢰하는 경영대학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결국 그 교수가 추천해 준 두 후보 중 한 사람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이런 관행이 운좋게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기업 가치를 파괴할 수도 있다. 전문적이고 공정한 CEO 선정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복수의 후보자군을 놓고 체계적 선정 과정을 거쳐 CEO를 선임한 가족기업들이 훨씬 높은 성과를 낸다는 실증 연구도 존재한다.

이곤젠더의 분석 결과, 탁월한 가족기업들은 대개 CEO 선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공식 추천위원회를 출범시켜 조직 내·외부에서 광범위하게 후보를 물색한다. 추천위원회는 복수의 후보자들에 대해 점수를 매겨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 위원들에게 제시하고, 이들이 합의를 통해 최종 후보자를 선정토록 한다.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면접을 진행하는 건 물론이다. 영국의 한 건설회사에서 비(非)가족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오른 한 전문경영인은 최종 임명되기까지 총 세 단계의 면접을 거쳐야 했다. 맨 처음엔 창업자의 3세인 인사책임자와 면접을 했고, 그 다음엔 오너가의 대표와 그의 남동생을 거쳐 다섯 명의 4세들과 한꺼번에 면담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사외이사 각각과 일대일 면담을 해야 했다.

●신임 CEO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중요하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과정을 통해 후계자를 선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진정으로 성공적인 승계가 이뤄지려면 새로 임명된 CEO에게 적절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신임 CEO가 가문의 일원이 아닌 외부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곤젠더가 인터뷰했던 한 독일 기업 고위 임원은 “오너 일가가 내게 전권을 위임한다고 말하고는 이튿날 내 영역을 침범해 그들끼리 결정을 해 버린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들만의 리그에 일원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내 일이라는 느낌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경영자도 있었다. 비가족 구성원 출신의 CEO일수록 오너가의 주요 구성원들을 만나고 유대감을 형성하며 조직 내 핵심 인사들과 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적당한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신임 CEO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CEO 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되며 기업 가치도 높아진다.

이방실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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