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니 눈물…이정철 감독, 세번 기억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3일 05시 45분


IBK기업은행 김사니(오른쪽 끝)가 지난달 31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NH농협 2014∼2015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도로공사를 3-0으로 꺾고 우승한 뒤 후배들을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화성|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IBK기업은행 김사니(오른쪽 끝)가 지난달 31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NH농협 2014∼2015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도로공사를 3-0으로 꺾고 우승한 뒤 후배들을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화성|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V리그 챔프전 MVP 김사니 - IBK 이정철 감독’의 숨은 인연

1. 올림픽 티켓 놓친 2008년 대표팀 라커룸
2. 이 감독 부름에 IBK입단…고된 훈련 도중
3. 몸치료하며 악착같이 뛴 올시즌 우승 직후

‘NH농협 2014∼2015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MVP) 김사니(34·IBK기업은행)는 지난달 31일 우승이 확정된 순간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를 치렀고 정상도 경험했던 베테랑에게도 남다른 감회가 있었던 우승이다. 누가 뭐래도 이번 ‘봄 배구’의 주인공은 김사니였다. IBK 이정철 감독은 “(MVP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오늘(3월 31일) 경기에서 몇 차례 보여준 백토스는 예술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도로공사와의 챔프 1차전 후 경기를 요약해달라고 했을 때 “역시 김사니였다”는 한마디로 끝냈던 이 감독이었다. 공교롭게도 김사니는 이 감독 앞에서 3번의 눈물을 흘렸다.

● 책임과 좌절

2008년 5월이었다. 이정철 감독과 김사니는 2008베이징올림픽 세계예선전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의 감독과 주전 세터였다. 한국은 일본에서 벌어진 이 대회에서 2승5패에 그쳐 베이징행 티켓을 놓쳤다. 이 감독이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기억이다. 당시 여자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을 놓고 말이 많았다. 구단들이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았다. 김연경, 정대영, 황연주 등이 아프다거나 수술을 한다는 등의 핑계로 대표팀 엔트리에서 빠졌다.

한국이 세르비아, 폴란드, 일본, 카자흐스탄, 도미니카공화국에 져 탈락이 확정된 날 라커룸에서 유일하게 울던 선수가 김사니였다. “감독님 죄송해요”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김사니는 “김연경, 정대영, 황연주가 다 왔으면 우리가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슬펐다”고 회상했다. “그때 김사니만큼 대표팀 유니폼에 책임감을 느끼고 승리를 열망한 선수는 없었다”고 했던 이 감독은 그 눈물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 한계와 극복

지난해 아제르바이젠에서 한 시즌을 뛰고 돌아온 김사니는 FA(자유계약선수) 3차 협상 막판 이정철 감독의 문자를 받았다. 이 감독은 “우리 같이 잘해보자. 네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효희가 떠난 뒤 주전 세터 공백에 고민하던 이 감독은 김사니를 원했다. 전화로 연락하고 문자를 보낸 그 정성에 김사니는 IBK행을 결정했다.

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공항에서 만나 전격적으로 마무리한 입단이었다. 이 감독은 김사니의 나이를 고려해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원한다면 숙소에서 생활하는 대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약속은 절반만 지켜졌다. 훈련이 너무 고됐다. 김사니가 집에 가고 싶어도 힘들어서 못가는 날이 이어졌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에 김희진, 박정아, 남지연 등이 차출되고 팀에는 고작 8명의 선수들만 남아 16명이 하던 훈련을 했다. 김사니는 그 훈련에 못 견뎌했고 폭발했다. 감독과의 면담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버티라고만 하시면 어떡하냐”며 울었다. 이 감독은 “그래도 버텨라. 그래야 좋아진다”며 달랬다.

그 때의 눈물이 챔프전의 김사니를 만들었다. 한창 때보다 체력이 떨어지고 아제르바이잔에서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해 엉망이었던 몸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신인 때 빼고는 이렇게 많은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던 김사니는 회춘했다. 자신에게 2번째 우승반지를 선물할 준비를 마쳤다.

● 스스로에게 한 칭찬

포스트시즌 들어 김사니의 플레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꼭 이번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정철 감독은 “(김)사니가 요즘 엄청 열심히 한다. 예뻐 죽겠다”고 말했다. 후배들도 ”코트에서 수비 위치를 알려주고 점수가 나지 않으면 먼저 (김사니 언니가) 자기 잘못이라고 한다. 표정부터가 다르다”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쌓아온 성적은 화려했지만, 정작 가지고 있는 반지가 많지 않았던 김사니였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투지가 넘쳤다. 경기 때마다 “언니와는 라이벌이 아니다”고 계속 말했지만, 이번 챔프전에서 이효희(35·도로공사)와의 대결이 집중 부각되면서 더욱 의지를 불태웠다.

열정과는 달리 몸 상태는 나빴다. 힘들게 한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오금이 아파서 경기 도중 절뚝거렸다. 어떤 때는 발이 버텨주지 못해 쓰러졌다. 챔프전 1·2차전 수훈선수이면서도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빨리 가야 해 인터뷰에도 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했다. 토스, 디그, 블로킹, 서브에 매 순간 집중했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우승이 확정된 순간 내 자신에게 대견한 느낌이 나서 울었다”고 했던 김사니는 스스로를 칭찬할 자격이 충분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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