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 “어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내가 처한 삶과 닮아있더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1일 05시 45분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연출했던 강제규 감독이 신작 ‘장수상회’를 통해 처음으로 멜로에 도전했다. 그것도, 죽음을 앞둔 노부부 이야기다. 스포츠동아DB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연출했던 강제규 감독이 신작 ‘장수상회’를 통해 처음으로 멜로에 도전했다. 그것도, 죽음을 앞둔 노부부 이야기다. 스포츠동아DB
영화 ‘장수상회’로 돌아온 강제규감독

어머니 암으로 작고·아버님 알츠하이머
‘장수상회’ 첫 시나리오 보고 눈물 펑펑
싱거운 멜로영화? 굳이 조미료 필요없어


세상을 향한 의문, 사람을 대하며 갖는 궁금증, 하물며 자연경관을 바라보면서도 떠오르는 질문. 보통 ‘호기심’이라 부른다.

궁금한 게 많으면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감독 강제규(53)는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참 많았다”. “궁금한 걸 참지 못했고 그렇게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 기획한 여러 일은 대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며 “남들은 무심코 넘기는 것까지 들여다봤다”고 했다.

‘한국 블록버스터는 곧 강제규’로 통할 만큼 대작에 집중해왔던 그가 순제작비 30억원을 들여 노년의 사랑을 그린 ‘장수상회’(제작 빅픽쳐·9일 개봉)를 만든 배경도, 굳이 찾자면 바로 ‘호기심’이다. 첩보액션 ‘쉬리’부터 1000만 관객을 모은 ‘태극기 휘날리며’, 전쟁블록버스터 ‘마이웨이’까지 영화의 시스템과 제작 규모를 확장해온 그가 처음으로 멜로, 그것도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사랑에 주목한 이유다.

“작년 2월이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몇 편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었다. 투자사에서 ‘장수상회’ 시나리오를 봐 달라길래 읽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영화 주인공 성칠(박근형)과 금님(윤여정)이 처한 상황은 그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꽤 닮아 있었다.

“어머님은 암으로 돌아가셨다. 86세인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다. 나와의 일체감,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가졌던 ‘갈증’도 도전의 동인이 됐다. “작지만 공감과 울림 있는 영화”에 대한 희망을 누구보다 이해하던 아내(연기자 박성미)는 남편의 고민을 듣고 “무조건 (연출)해야지”라며 힘을 줬다.

“0.1초의 망설임 없이 하라더라. 하하! 언제 이런 영화 할 수 있겠냐면서.”

1980년대 말부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1996년 ‘은행나무침대’로 데뷔했으니 연출가로 살아온 지도 햇수로 20년째다. 그런데도 이번 영화를 찍는 도중 그는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을 여러 번 맞닥뜨렸다.

“맛이 싱거웠다. 화면을 꽉 채우는 것들이 없으니까 심심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철저하게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고 여겼다. 조미료 치지 않으면 어떤가.”

그는 ‘바쁜 감독’으로 통한다. 무대는 국내외를 넘나든다. 누구보다 먼저 할리우드와 중국에 진출해 인프라를 나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제안을 받는 감독이기도 하다.

“중국은 결국 우리에게 기회 아니면 역풍이 될 수 있다. 한중 합작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

강 감독은 현재 중국과 서너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책임프로듀서를 맡은 영화도 두 편이다. 그 중 하나가 손예진이 주연한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이다. 중국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내년께 시대극을 연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1900년대가 배경이다. “두 달 뒤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내년 봄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시대상황이 가미된 영화”라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지내는 그의 두 아들은 영화에 매진하는 아버지를 지켜본 탓인지 영화 관련 일에는 엄두를 내지 않는다. 대학 2학년생인 첫째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다. 둘째의 진로 역시 영화와 무관하다.

“아마 내가 ‘장수상회’ 같은 영화를 주로 했다면 아들 중 누군가는 영화 하고 싶다고 했을 텐데. 너무 힘든 영화만 했다. 고생스러운 모습만 보여줬고. 두 아들이 ‘영화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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