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교수 “할머니의 30년 콩맛에 서울大 기술 갈아 넣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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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 ‘약콩두유’ 개발 이기원 교수

6일 오후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전공 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약콩두유’를 손에 들어보이며 콩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6일 오후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전공 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약콩두유’를 손에 들어보이며 콩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6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실 안으로 180cm가 넘는 키의, 조교 같아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수인사를 나누는데 놀랍게도 그가 바로 인터뷰를 하기로 한 이기원 교수(41·식품생명공학)였다. 희끗한 머리와 볼록 나온 배를 예상했는데 뜻밖이었다.

이 교수는 ‘콩박사’로 유명하다. 10년 넘게 콩을 연구해 왔다.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콩 화장품(이니스프리 ‘제주콩 자연발효 에센스’)을 만들었고, 농심의 ‘콩라면’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지금은 배우 이영애 씨와 콩을 원료로 한 클렌저 화장품을 개발 중이다.

이 교수는 지난달 서울대 자회사인 밥스누(BOBSNU)를 통해 ‘약콩두유’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이 제품은 예부터 해독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쥐눈이콩으로 만들었다. 설탕이나 과당 대신 느릅나무 껍질과 해조류에서 나온 천연물질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으로만 팔았는데도 시판 한 달 만에 30만 개가 팔려 나갔다.

약콩두유를 비롯한 콩 제품에는 이 교수의 숨겨진 집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할머니는 서울 강남구에서 30년 넘게 콩 음식점인 ‘피양콩할마니’를 운영해온 강산애 씨(87)다. 어린 시절 할머니 슬하에서 큰 이 교수는 콩비지를 참 많이 먹었다고 했다. 그때 그 맛과 할머니가 콩비지며 콩국물을 만드는 방식을 참고해 만든 것이 바로 약콩두유다. 이 교수는 할머니처럼 국산 콩을 사용하고, 영양소가 날아가지 않게 콩을 껍질째 갈았다.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서는 커피처럼 콩을 로스팅(볶음)했다.

그는 콩이 건강이 좋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93세인데 매일 서울 강남에서 경기 의정부를 오가세요. 저녁마다 할머니 음식점에 가서 비지를 드시는데 그게 건강 비결인 것 같습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선 콩이 들어간 음식에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표기를 할 수 있다”며 “현재 콩이 피부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연구를 서울대병원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교수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이탈리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음식에 두유와 잣 소스를 쓰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며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식당은 크기도 작고 인테리어가 세련된 것도 아닌데 월 매출이 4000만∼5000만 원이나 됩니다. 제 식당은 전문가들이 다 붙어서 해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콩을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 음식을 만드시는 것에 세월과 철학이 함께 배어 있었더라고요.”

그는 “할머니의 철학과 노하우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도 계속 콩 관련 연구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약콩두유#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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