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설선물]Since 1951… 대를 이어 지키는 변함없는 茶 맛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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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다’ 차

한국제다가 전남 영암군 덕진면에 가꾸는 17만㎡ 차밭과 중국의 반 발효차 수입에 맞서 개발한 황차(오른쪽). 한국제다 제공
한국제다가 전남 영암군 덕진면에 가꾸는 17만㎡ 차밭과 중국의 반 발효차 수입에 맞서 개발한 황차(오른쪽). 한국제다 제공
녹차는 남도의 따뜻한 봄기운과 생명감을 머금고 있는 품격의 음료다.

광주시에는 직접 차를 재배해 차 제품을 생산 판매하며 품질관리까지 하는 제다업체가 있다. 바로 무등산 자락인 동구 소태동에 자리한 한국제다. 한국제다는 60년 넘게 각종 차 제품을 생산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2대째 전해지고 있는 차 제조비법 덕분에 1년 내내 품질 변화가 없는 차 제품을 만들어내는 덕분이다.

한국제다 1대 사장 서양원 씨(2012년 작고)는 1951년 전남 순천시 인제동에 한국홍차라는 회사를 차렸다. 1950년대 당시 찻잎은 양은그릇 염료로 공업용으로 주로 쓰였고 음료로는 절에서 스님들이 마시기 위해 조금씩 만드는 수준이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일본 관광객이 한국을 찾으면서 녹차 생산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당시 의재 허백련 화백(1891∼1977)이 무등산 차밭에 ‘삼애다원(三愛茶園)’이라는 이름을 붙여 춘설차(春舌茶)라는 상표로 녹차를 생산해 명성을 얻고 있었다. 서 씨는 춘설차 명성을 찾아 광주로 온 뒤 1964년 무등산 자락으로 공장을 이전해 녹차, 홍차, 결명차 제품을 생산했다.

서 씨는 1965년부터 전남 장성군 남면과 영암군 덕진면, 해남군 해남읍에 33만여 m² 규모의 차밭을 운영했다. 장성 차밭은 당시 국내 차 생산 북방한계선이었다. 차밭 3곳을 따로따로 운영한 이유는 5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차를 섞어야 맛의 변화가 없고 해마다 최고 품질의 차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녹차명인’으로 우뚝 선 서 씨는 중국의 반 발효차 수입에 맞서 황차를, 일본 말차에 맞서 가루차를 개발했다. 1994년에는 일본에 두충차를, 1995년엔 캐나다에 작설차를 처음으로 수출했다. 1979년에는 신록차라는 이름의 녹차를 보급했다.

서 씨의 아들 민수 씨(47)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2013년 전통식품 명인이 됐다. 민수 씨는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차 제조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전수받은 황차와 말차 제조기술을 현대적 감각으로 개량하고 차의 대중화를 위해 국내외에 무료 차 체험관을 건립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의 062-222-2902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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