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통상임금 문제 해법은 무엇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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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달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제기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다투는 소송의 1심 판결이 내려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사용자 측은 통상임금 소송을 직군별로 23명의 직원을 선정해 대표소송으로 진행하고 그 결과를 전체 직원들에게 적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치적 사건도 아니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엽기적 사건도 아닌데 이처럼 1심 판결이 국민적 관심사항이 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 판결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이 내려질 경우 현대자동차가 근로자들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이 5조 원에서 최대 13조 원으로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내놓은 뒤에도 하급심 판결 중에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와 배치되는 판결이 더러 있었다. 그로 인해 기업 현장의 혼란은 더 커졌고 현대자동차라는 상징성을 가진 이 사건 판결 내용이 향후 여러 관련 소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변은 없었다. 1심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통상임금 판단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소정 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1심 판결은 정기상여금의 복합적 성격을 인정해 정기상여금은 순수한 근로의 대가가 아니라 포상적 성격 등 다양한 성격을 가진 임금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그에 따라 재판부는 “(해당 상여금이)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 한다는 추가적이고 불확실한 조건을 성취해야 비로소 지급되므로 고정성이 인정될 수 없으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하급심이 대법원의 판단 취지를 존중해 일관성 있게 판결한다면 최소 수백 건에 이르는 다른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대해서도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제기됐던 통상임금 소송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규칙의 개선이 없는 한 앞으로도 통상임금 소송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같은 회사 안에서도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다르게 판단되는 결과에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적지 않을 것이며 근로자들 간에도 부당한 이익불균형 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마다 상여금의 지급 조건에 따라 실제 수당 계산을 위한 통상임금 범위가 달라진다면 산업계의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특히 한국GM 사건에서 보았듯이 통상임금 범위의 불확실성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는 상당한 투자 위험요인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더 늦기 전에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와 입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이른바 ‘노사관계의 사법화(司法化)’를 초래하는 소모적이고 무책임한 소송전이 난무하고 있다. 판결을 통해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이익조정이 행해질 수 있다면 모를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산업계의 혼란 최소화와 공정한 이익조정을 위해서는 결국 법률을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으니 입법화의 과정도 험난하다. 그렇다면 일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판단 기준을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르더라도 현실에서는 기업 간, 근로자 간에 불공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노사의 자율적 합의를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 것이다.

입법화를 하더라도 통상임금의 문제가 기본급 비중이 낮고 수당과 상여금의 비중이 높게 형성된 잘못된 임금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비정상적인 임금체계를 노사가 스스로 혁신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정기상여금의 성격과 지급 방법을 다시 조정하는 등 임금체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합리적 노사관계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통상임금 사태를 통해 노동법의 합리적 규칙이 국민경제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상임금#노사#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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