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건혁]겨울 인사철… 경찰은 ‘농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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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혁·사회부
이건혁·사회부
“아무 일도 없어요. 조용∼합니다.”

겨울철 일선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경찰관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소위 ‘수사보안’을 지키기 위해 하는 말 같지만, 수년간 경찰서를 취재해 보면 이 말이 겨울철에는 그냥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란 걸 깨닫게 된다.

경찰 정기 인사는 12월부터 2월까지 2개월 넘게 진행된다. 이번 겨울 인사는 지난해 12월 1일 경찰청장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 인사부터 시작했다. 지방경찰청의 ‘허리’인 경정 및 경감 전보 인사는 그 후로부터 두 달 지난 30일에야 겨우 끝났다. 2월 중순이 돼야 순경 인사까지 마무리되면서 경찰 조직이 정상 작동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요즘엔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농부가 겨울에도 일하기 때문에 ‘농한기’란 말이 사라졌지만 유독 경찰에선 발령 날 때까지 업무에서 손을 놓는 탓에 이 기간을 ‘농한기’라 부른다. 살인과 강도 등 중요 발생 사건은 어쩔 수 없이 챙기지만 범죄 첩보, 기획 수사 등 실적이 될 만한 보고는 뚝 끊긴다.

매년 두 달 이상 업무가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내부 불만도 적지 않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 형사과 간부는 “12월부터는 제대로 된 첩보가 들어오지 않는다. 할 일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새로운 상사가 왔을 때 하나씩 풀어 보려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업무 공백이 ‘연례행사’처럼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 경위급 경찰관은 “인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열심히 일하면 동료들로부터 ‘미련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고 털어놨다.

경찰 지휘부도 인사철 농한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최근 참모들에게 “겨울철이라고 범죄가 없는 게 아니다. 인사 농한기를 없앨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경찰이 내놓는 대책은 ‘특진’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매년 실적이 가장 떨어지는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간의 업무 결과를 평가해 특진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 중시’를 강조하는 강 청장의 방침에 맞춰 올해 특진 대상자 수도 예년보다 20%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승진이라는 ‘당근’으로 농한기 업무 공백 문제가 모두 해결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체 경찰이 승진에 매달리면서 민원 처리나 112 출동 등 ‘빛 안 나는’ 일에 소홀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청와대부터 시작해 경찰청, 각 지방경찰청을 거치며 불필요하게 2개월 넘게 진행되는 현행 인사 기간을 최대한 줄이면 될 일이다. 윗선의 압력이나 인사 청탁이 많아서, 온갖 투서를 검증하느라 그런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겨울#인사철#농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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