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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스케치]사각사각 짜릿한 손끝… 너를 놓고 싶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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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스케치]사각사각 짜릿한 손끝… 너를 놓고 싶지 않구나

김성모 기자입력 2015-01-31 03:00수정 2015-01-3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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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의 귀환, 손글씨 쓰는 사람들
박종진 씨가 촉이 휘어 버린 만년필을 고치기 위해 펜치를 들었다. 17일 그가 운영하는 만년필연구소에는 초등학생부터 60대 남성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연구소를 찾은 손님들이 신기한 듯 박 씨가 만년필 고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보고 있으면 나도 하고 싶어진다. 소리까지 들으면 속된 말로 아주 죽여 준다. 고차원적으로 말하자면,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그 행위가 실존적 편안함을 안겨 준다. 미묘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촉감도 있다. 또 누구에게나 목적은 같지만 과정은 다양하다. 그러니 빠져든다. 본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딴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만년필(萬年筆)에 대한 이야기다.

기자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만년필연구소’를 찾았다. 을지로3가역 7번 출구로 나와 추위에 손을 비비고 있을 무렵 국내 최대 만년필 동호회 ‘펜 후드’의 회장 박종진 씨(44)가 나타났다. 그를 따라 대로를 걷다 낯선 골목길로 들어섰다. 3, 4층짜리 건물들 사이를 오가는 거미줄 같은 전선들. 색이 바래다 못해 시커멓게 때가 낀 건물들은 세월을 머금고 있었다. 녹이 슬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미닫이 창문들과 ‘한림문화’ ‘명성합지’ 같은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만년필을 고치는 박종진 씨의 손에 거뭇거뭇하게 잉크가 묻어 있다. 그의 손을 거친 2만여 자루의 만년필이 ‘살아나서’ 돌아갔다.
은밀한 수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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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없는데 용케들 다 찾아와요.”

‘철컥철컥’ 기계들이 무언가를 찍어내는 소리 사이로 박 씨가 입을 열었다. 4층짜리 허름한 건물 꼭대기에 그가 운영하는 만년필연구소가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엔 인터넷 홈페이지나 그 흔한 전화번호 하나 없다. 철문에도 ‘403호’라는 표지만 싱겁게 달려 있을 뿐이다.

문을 열자 검은색 소파에 사채업자 ‘형님’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을 법한 음습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은 ‘영혼의 친구’ 만년필을 위한 공간이다. 33m²(약 10평)가 채 안 되는 이 연구소에서 2007년 이후 박 씨가 고친 만년필만 2만 자루가 넘는다. 그는 수리비도 받지 않고 만년필을 고쳐 줬고, 소문은 동호인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박 씨가 목에 걸고 있던 500원짜리 동전만 한 돋보기를 만년필에 들이댔다. “이건 좀 어렵겠는데요.” ‘보호자’의 표정이 어둡다. 박 씨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고 책상은 ‘수술대’다. 이곳에서는 만년필을 ‘고친다’고 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이야기한다.

오후 3시 무렵 계단에서 손님들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등학생부터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까지 남녀노소가 뒤섞인 줄이 생겼다.

“예전에는 교수님들이나 글쟁이들이 많이 썼는데 요즘은 전혀 안 그래요.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아주 다양합니다.”

萬年동안 쓰는 펜? 萬人의 펜?

사실 이 시대에 만년필은 그다지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1970, 80년대만 해도 만년필은 부모님이 공부깨나 한다는 자식에게 졸업선물로 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파커’ 만년필 하나만 셔츠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모두가 부러워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독수리 오형제(다섯 손가락)’ 대신 엄지(2G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 입력)가 주목을 받더니, 이제는 검지(스마트폰 사용)의 시대가 열렸다. 학생들은 컴퓨터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리포트를 쓴다. 회사원들도 굴러다니는 볼펜으로 잠깐씩 끼적일 뿐 결재나 서명까지 컴퓨터로 하는 세상이다.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아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도 만년필은 팔린다. 2003년 2월 국내에 들어온 독일 만년필 브랜드 ‘라미(LAMY)’는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에는 2013년 대비 38%의 매출 성장을 거뒀다. 새빨갛거나 샛노랗게 광택이 나는 원색의 5만 원대 ‘입문용’ 또는 ‘저가’ 제품이 특히 많이 팔렸다. 신경숙 작가가 팬사인회에 라미의 노란색 ‘사파리 만년필’을 들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가 브랜드로 알려진 ‘몽블랑’ 역시 꾸준하게 판매가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몽블랑 만년필 매출은 2013년 12월 대비 16% 늘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핫트랙스’ 문구매장은 최근 만년필 매장을 기존의 2배로 확장했다.
만년필 관능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만년필을 쓸까. 도착했을 때 받은 커피가 식었을 때쯤 점잖아 보이는 40대 남성이 연구소에 들어왔다. 한참 동안 만년필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 그가 갑자기 기자의 귀에 손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은 섹스랑 같아요. 컴퓨터 속의 ‘윈도(Window·소프트웨어의 창)’를 통해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창문’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걸(실체를) 보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하죠. 그런 점에서 디지털은 돼지털만도 못합니다.”

잉크가 종이에 번져 가는 모양새와 특유의 냄새, ‘사각사각’ 하는 소리, 펜대의 매끄러우면서도 묵직한 촉감과 무게감 같은 감각은 가상세계가 제공하지 못하는 물리적 만족감을 준다. 만년필을 고치러 온 김용재 씨(59)는 “만년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 감각이 매력”이라며 “제품이나 메이커마다 특성이 있고 종이 재질, 잉크 종류에 따라서도 느낌과 냄새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얇은 펜촉은 빙판 위의 스케이트 날처럼 날카롭고, 두꺼운 펜촉은 설원에서 미끄러지는 스키처럼 부드럽다”며 “미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충족해 주는 도구를 인간이 포기하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의 답변에 기자가 직업을 물었다. 김 씨는 알고 보니 컴퓨터 전문가인 건국대 경영정보학 교수였다.

사실 무언가를 직접 쓰는 행위의 핵심에는 심오한 심리학적 배경이 있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는 마음에 평안함을 가져오며 잡념을 없애 주고 스트레스를 잊게 만든다. 쓰는 내용을 더 깊이 음미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두뇌가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어서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행동이 머릿속을 채우면 잡념이나 걱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손으로 글씨를 쓰면 잡념이나 스트레스가 글을 쓰는 행위로 대체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딴생각을 하면서 글씨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공부할 때는 손으로 쓰면서 외워라”라고 잔소리를 했던 것이 다 일리가 있다는 의미다.

장현갑 영남대 명예교수(마음챙김명상치유센터 소장)는 “글씨를 쓰다 보면 몰입하게 되는데, 그럼 결국엔 명상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며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을 하면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안정감이 생기는 것이 그 사례”라고 말했다. 특히 중장년층의 경우 만년필을 쓸 때 정서적 향수까지 더해져 좀 더 깊은 안정감을 얻는다.
물리적 결과물이 없으면 허무해진다

만년필을 쓰는 이유를 실존(實存)과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다.

“만년필이 컴퓨터 자판보다 낫다는 것은 주식보다 아파트가 좋은 것과 같아요.”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쓴 윤광준 작가는 만년필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뚱맞은 답을 내놓았다. 그는 만년필을 오래전부터 써 왔으며, 나무로 된 펜대를 선호한다.

“인간은 기능적 편리함 때문에 디지털 기술을 써 왔어요. 하지만 디지털은 구체적·실존적 결과물이 없어요. 편리함이 극에 달하더라도 물리적 행위나 결과물이 없으면 결국 허무(虛無)만 남게 됩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산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건물이나 땅 같은 ‘실체적 재산’을 선호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람은 자신이 한 행위의 흔적을 남기고 그 결과물을 보고 즐겨야 만족하는 족속이며, 기를 쓰고 ‘이름’을 남기려는 것이 인간의 습성 중 하나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세월, 소중한 사연들

메이커가 아니라 사연이 ‘보물’이어서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컬 김종진 씨는 해외에 나가면 꼭 문구점에 들러 만년필 코너를 둘러본다. 그는 1950년대에 생산된 펜촉이 낭창낭창한(탄력 있게 구부러지는) 만년필을 좋아한다고 했다. 곡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꼭 만년필을 사용한다. 원래 필기구에 대한 욕심이 있는 편이라는 김 씨는 스스로를 ‘아날로그 추종자’라 부른다.

“우리 세대 때는 중학교 올라갈 때 어른들이 만년필 한 자루씩 사줬어요. 친구들이 파커 만년필을 받았는데 저는 그보다 가격이 싼 국산 만년필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처음엔 공부를 못 해서 그랬나 보다 했는데 세월이 흘러 놓고 보니 그게 속상해서 ‘내가 받지 못했던 좋은 만년필을 가져 보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후 만년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 땐 오타를 쳐도 다시 예쁜 글씨로 고칠 수 있잖아요. 만년필은 안 그래요. 쓰는 각도나 힘에 따라 선이 다르게 나오고 일단 쓰면 고칠 수가 없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헬스케어 전문업체 ‘바디프랜드’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박영하 이사의 만년필에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는 항상 셔츠 주머니에 은색 파커 만년필을 꽂고 다닌다. 박 이사는 “19년 전에 지금의 아내가 약혼식을 하는 대신 만년필을 선물해 줬다”며 “다른 펜하고는 의미가 다르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는 만년필은 아내이자 세월이다.

회사원 양재원 씨(39)는 60여 자루의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격이 얼마 되지 않는, 이름 없는 브랜드 제품이다. 양 씨는 “아버지가 성경 전권을 필사하고 건네주신, 값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만년필과 '작은 사치'

책 ‘남자의 물건’을 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은 만년필을 사랑하기로 유명한 이다. “이제 겨우 60자루를 모았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는 만년필이 좋은 이유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내 인생에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라고 말했다. 인생에선 본인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지만, 만년필만은 자기 마음대로 사서 골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작은 사치’란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작은 호사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잊고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성향이 있다”며 “특히 자기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보여 주는 만년필과 같은 물건이야말로 작은 사치의 대상이 되기에 좋다”고 말했다.

여하튼 손안에 컴퓨터(스마트폰)를 들고 다니고,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이 최첨단의 시대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아날로그 필기구인 만년필에 빠져들고 있다. 이들은 만년필을 두고 “사고 말고(buy or not)의 문제가 아니라 살고 말고(live or die)의 문제”라고 말한다. 마우스 대신 만년필을 손에 쥔 사람들. 그들이 소리 없이 외친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만년필#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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