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70조원으로 훌쩍 큰 ELS “주식형펀드, 비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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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빙하기 어디서 돈 굴리나

요즘 자산시장은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투자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이다. 사상 최저 금리에 증시 침체가 길어지면서 돈 굴리기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유가 급락, 그리스·러시아의 경제 불안, 중국의 경기 둔화,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국내외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변수가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을 떠도는 단기 부동자금은 800조 원에 육박한다.

이런 ‘재테크 빙하기’에도 시중자금을 무섭게 끌어들이고 있는 투자 상품이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투자액 ‘70조 원 시대’를 연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는 이름표를 단 ELS는 한때 간접투자 상품의 대명사였던 주식형펀드를 제치고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민 재테크’ 아이템 된 ELS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된 ELS는 전년보다 무려 57%(26조809억 원)나 급증한 71조7967억 원 규모였다. 2003년 ELS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10조4561억 원어치가 발행돼 사상 처음으로 월간 발행금액 10조 원을 돌파했다.

첫해 3조 원 규모로 출발해 3년 만에 20조 원대로 커졌던 ELS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2009년에 약 12조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해 2012년부터 40조 원 중반대의 수준을 유지해 오다가 지난해 단숨에 70조 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ELS가 급성장하는 동안 간접투자시장의 ‘대명사’였던 주식형펀드는 추락했다. 펀드 열풍을 타고 2008년 134조 원을 돌파했던 주식형펀드 시장은 지난해 말 69조 원대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그 사이 펀드 계좌도 1000만 개 이상 사라졌다. 금융위기 이후 어마어마한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펀드시장에서 탈출해 ELS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ELS는 증권사가 코스피200 같은 지수(지수형)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개별종목 주가(종목형)의 움직임에 연동해 투자자에게 약정한 수익률을 주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대체로 만기 3년에 조기상환 조건을 달고서 2, 3개의 기초자산(지수나 개별종목)의 가격이 계약시점보다 40∼5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연 7% 안팎의 수익을 주는 상품이 많다.

유안타증권이 최근 발행한 3286호 ELS를 보자. 이 ELS는 코스피200과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를 기초자산으로 한 만기 3년 상품이다. 두 지수가 만기 때까지 발행 당시 주가(최초 기준가)보다 60%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으면 3년 뒤 21.6%(연 7.2%)의 수익을 돌려준다. 또 6개월마다 중간평가를 해 조건이 맞으면 3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원금과 약속한 수익을 준다. 평가일 주가가 최초 기준가의 90%(1년 차)·85%(2년 차)·80%(3년 차) 이상이면 연 7.2% 수익률로 조기 상환되는 것이다.

위험도 있다. 3년간 두 지수 중 하나라도 원금손실(녹인·Knock-In) 구간인 최초 기준가의 6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있으며, 동시에 만기 때 주가가 기준가의 80% 이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올해 85조 원 시장으로 커질 것”

이렇게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이 낮으면서 채권 투자보다는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ELS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불린다. 안정적인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을 사로잡는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특히 지난해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 예금금리가 연 1%대까지 추락하자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추구하는 ELS에 시중자금이 빠른 속도로 몰리고 있다. 예·적금의 만기가 돌아온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은행·보험 등 금융회사까지 ELS를 사들이고 있다. 작년 12월에 ELS 발행금액이 10조 원 이상으로 급증한 것도 퇴직연금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관석 신한은행 안산금융센터 지점장은 “시중금리는 너무 낮고 그렇다고 주식 같은 투자 상품에 돈을 넣기엔 아직 불안한 상황에서 ELS가 대안상품으로 뜨고 있다”며 “일정 수준 이하로만 주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장영준 대신증권 압구정지점 부지점장은 “과거에는 투자 경험이 있는 일부 투자자만 ELS를 찾았는데 지금은 일반 고객들도 먼저 와서 물어본다”며 “ELS 투자가 보편화됐다”고 설명했다.

증권사가 선보인 ELS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은행들도 ELS를 연계한 상품 판매에 나서고 있다. ELS를 신탁계정에 담아 신탁 형태로 운용하는 주가연계신탁(ELT), ELS를 펀드 형태로 운용하는 주가연계펀드(ELF)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시중은행들의 ELT, ELF는 한 달에 최고 6000억 원 이상 판매됐다.

올해도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가운데 답답한 ‘박스권’ 증시와 초저금리 상황이 계속되면서 ELS가 꾸준히 인기몰이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난해 70조 원을 넘어선 ELS 시장이 올해는 85조 원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초자산, 상환 조건 꼼꼼히 따져야”

그렇다면 ELS는 ‘중위험, 중수익’이란 이름에 걸맞은 성적을 올리고 있을까. 이는 ELS가 지수형이냐, 종목형이냐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월별로 만기 또는 조기 상환된 공모형 ELS의 수익률을 연간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 지수형 ELS는 매달 꾸준히 6% 안팎의 수익을 올렸다. 정기예금 이자의 3배 정도 이익을 무난히 거둔 셈이다.

하지만 종목형 ELS의 성적은 천차만별이다. 작년 7월 상환된 종목형 ELS는 7.46%의 손실을 낸 반면 10월 상환된 ELS는 7.51%의 이익을 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상환된 종목형 ELS 3318개가 손실을 냈다. 특히 조선, 정유, 화학 업종의 종목을 담은 ELS는 ‘손실 폭탄’이 돼 돌아왔다. 대표적으로 STX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는 무려 98.47%의 손실을 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2011년 ELS 발행 당시 최고가를 찍었던 이들 종목의 주가가 원금손실 구간 밑으로 폭락한 뒤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카드, LG이노텍, 삼성테크윈 등을 담은 ELS는 평균 10%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이렇게 주가 등락에 따라 종목형 ELS는 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는 위험이 따르는 만큼 ELS를 모두 중위험, 중수익으로 분류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진 삼성증권 압구정지점 차장은 “종목형 ELS는 손실 보는 상품이 많지만 지수형은 금융위기 같은 큰 충격이 오지 않는 이상 손실을 보는 일이 드물다”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수형 ELS에 투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들은 원금손실 가능성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를 위해 ELS의 단점을 보완해 한층 ‘진화된’ 상품도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하면 만기가 연장되는 ELS를 내놨고, 삼성증권은 원금손실 범위를 20%까지로 제한한 ELS를 선보였다.

이관석 지점장은 “ELS는 기초자산 종류와 구성, 조기상환 조건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중도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만기 때까지 3년간 돈이 묶일 수 있으니 여유자금을 갖고 투자하라”고 강조했다. ELS는 중도에 환매할 경우 수수료가 평가금액의 5∼10%로 높은 편이다. 최철식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은 “ELS에 1억 원만 투자해도 3년 지나 만기 때 한꺼번에 이자를 받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절세 차원에서 월지급식 형태로 나온 ELS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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