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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현대판 만물상’ 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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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현대판 만물상’ 26년

최고야기자 입력 2015-01-31 03:00수정 2015-01-31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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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편의점 2만6000여 곳 가운데 상당수는 출입문 셔터가 필요 없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환하게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구미(歐美)식 구멍가게 편의점 늘어난다…. 작은 매장에 수천 가지 상품 진열, 새벽부터 심야까지 영업 큰 인기.’(1989년 3월 11일자 동아일보)

동아일보 지면에 ‘편의점’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89년이다. 당시 기사에는 편의점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독자를 위해 ‘서구식 소매점’ ‘현대화된 구멍가게’라는 친절한 설명이 꼭 따라붙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편의점을 ‘1980년대 들어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달라진 생활 패턴에 맞춘 유망한 유통업태’라고 설명했다.

동네 구멍가게가 대부분이었던 대한민국에 편의점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미국의 대형 편의점 체인업체인 세븐일레븐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앞서 롯데쇼핑에서 1982년 ‘롯데세븐’이란 이름으로 편의점 사업을 시작했지만 당시 생활 패턴과 맞지 않아 2년여 만에 사업을 접었다.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에 국내 첫 점포인 ‘올림픽선수촌점’(1989년)을 개점한 이후, 1990년에는 보광그룹의 훼미리마트(현 CU·씨유)와 미원통상의 미니스톱, LG유통(현 GS리테일의 전신)의 LG25(현 GS25) 등이 잇달아 편의점 시장에 뛰어들며 판이 커졌다.


1989년 전국에 단 7곳뿐이었던 편의점은 1990년대를 거치며 급속도로 늘어났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체인 형태의 편의점 1호점이 등장한 지 4년 만인 1993년에 1000호점을 돌파했다. 2007년 전국 점포 수 1만 개를 넘긴 이후 2014년에는 점포 수가 2만6456개까지 늘어났다. 현재 편의점 점포 1곳당 인구수는 1940명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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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서부터 늦은 밤 귀갓길까지 하루에도 수십 곳의 편의점 앞을 지나친다. 하루 평균 전국 880만여 명(2013년 기준)이 편의점을 이용하고, 편의점 불모지로 통했던 백령도와 울릉도 등 섬 지역까지도 사람이 사는 곳엔 속속들이 점포가 들어섰다.

편의점 대중화 26년, 지금 현대인에게 편의점은 하루도 뗄 수 없는 일상의 소비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지갑 얇은 청춘도, 퇴근길 기러기 아빠도 “고맙네 친구” ▼

한 끼 식사를 해결해 주는 도시락이나 라면부터 해외 직접구매(직구) 대행 서비스, 집 앞 배달 서비스까지…. 편의점은 상품 구색과 서비스를 다양화하며 ‘종합편의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편의점이 언제부터 이곳에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중략) 여관 피씨방 테이크아웃 커피점 호프집 교회……. 편의점은 언젠가부터 그것들 틈에 말쑥한 차림의 전입생처럼 앉아 있었다.’ (김애란 단편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 중에서)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은 캄캄한 밤에도 눈을 감지 않고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 아침을 굶고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 얇은 지갑 사정 때문에 1000원짜리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 늦은 밤 귀가하며 맥주를 사가는 ‘기러기 아빠’까지…. 언제나 가까이에서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무리하는 편의점의 24시간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편의점 역사 26년, “그땐 그랬지”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편의점을 구경하려고 온 고객들이 20m씩 줄을 서기도 했어요. 음료 기계에 ‘셀프(self)’라는 문구를 써 붙인 것을 보고 ‘셀프 음료수 주세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죠.”

올해로 25년째 서울 도봉구에서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근재 씨(58)의 말이다. 1990년 점포를 열었을 당시 고 씨의 가게가 도봉구의 유일한 편의점이었다. 지금은 어느 누구나 자연스럽게 찾는 공간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드립 커피나 데워 먹는 핫도그 등 동네 슈퍼에서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은 분명 낯선 공간이었다.

문을 닫지 않는 24시간 운영 시스템도 신기함의 대상이 됐다. 밤 12시 전에 거의 모든 상점의 불이 꺼졌지만, 편의점은 외딴섬처럼 밤새 홀로 불을 밝혔다.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오는 자녀를 마중 나온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24년째 편의점 CU(옛 훼미리마트)를 운영하는 손학복 씨(50)는 “처음 편의점을 열었을 땐 밤 12시가 넘으면 상품 가격에 할증이 붙는 것 아니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점포 수를 급속도로 늘려가며 승승장구하던 편의점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는다. 할인 소매점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편의점 역사상 유일하게 매출 실적이 전년 대비 4.6%나 떨어졌다. 손 씨는 “당시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을 제외하고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비스 확대… 1인가구 중심 ‘유통의 꽃’으로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든 2000년대에 들어서 편의점은 고도 성장기를 맞는다. 2007년 전국 편의점 수는 1만1000여 개로 급격히 늘었다. 경쟁이 가열되며 편의점 업체들은 상품 판매를 뛰어넘는 다양한 생활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1인가구의 증가로 편의점을 대형마트나 백화점보다 유망한 업태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편의점은 금융 배달 보험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팔방미인’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2000년에는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편의점 안에 들어서면서 은행에 가지 않고도 편의점에서 간단한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001년에는 택배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2년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물건을 편의점에서 대신 받아주는 픽업 서비스가 도입됐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보험 판매와 항공권 예약, 상하수도 요금 수납, 국세 수납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알뜰폰 판매와 해외직구(직접구매) 대행 서비스, 식당형 편의점 도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편의점은 이제 ‘유통업의 꽃’으로 불린다. 대형마트에 가서 싸게 많이 구입하기보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소용량 제품을 사서 쓰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편의점은 ‘옴니채널’(온·오프라인에서 같은 쇼핑 환경을 제공하는 접점)로 주목 받는다. 롯데그룹은 온라인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면 집 앞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물건을 픽업하는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편의점이 현대판 ‘만물상’으로 진화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혼자 사는 20, 30대뿐 아니라 이동거리의 편리성이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층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일본의 경우 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나 생필품 택배 서비스, 점포 내 조제 약국 설치 등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한국에서 편의점은 곧 노인 복지 정책의 공간적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만물상#편의점#구멍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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