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이럴 바엔 의원내각제가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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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우리 정치는 모순 덩어리다. 제도와 행태가 질서정연하지 못하고 헝클어져 있다. 국정이 삐걱거리고 잡음이 심할 수밖에 없다. 고장 난 자동차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우선 국회의원의 총리나 장관직 겸임을 보자. 역대 정부들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관행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그동안 잠잠하다 하필 지금 논란거리가 되니 이완구 총리 후보자로선 억울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처럼 3권 분립을 기초로 하는 대통령중심제에서 겸직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 장관은 행정의 집행자고, 의원은 행정의 견제자다. 같은 사람이 행정을 집행도 하고 견제도 하는 것은 모순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내각 통할권을 가진 총리의 관계도 애매하다. 대통령이 직접 장관들을 상대하며 모든 행정을 관할해야 하는데 중간에 총리가 있으니 어정쩡하다. 총리한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면 대통령이 허수아비가 되고, 권한을 적게 주면 총리가 핫바지가 된다. 총리의 역할을 두고 말썽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대통령이 청와대를 더 중시하게 되니 청와대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실질적 내각 구실까지 하게 된다. 청와대로 권력이 쏠리니 비선 실세니 국정 농단이니 하는 군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취임해도 곧바로 국정에 매진하기 어렵다. 이전 정권의 총리가 새 정권의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 제청하고,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이전 정권의 장관들이 대신 참석하기도 한다. 국회의 총리 임명 동의, 총리의 장관 임명 제청, 장관 인사청문제도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작심하고 임명 동의나 인사 검증에서 심통을 부리면 총리와 장관의 부재 상태가 장기화된다. 정부 조직 개편도 야당이 승인하지 않으면 공중에 붕 떠 버린다. 졸지에 새 정권이 만신창이가 되면서 국정 동력도 떨어지게 된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 국정 공백이 심각하다.

정부와 여당의 관계도 모순 그 자체다. 여당은 정권 창출의 주역이니 당연히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도울 책무가 있다. 그러나 여당은 국회의 일원이기에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과 손발을 너무 잘 맞추면 ‘청와대의 하수인’ 소리를 듣고, 둘의 관계가 나쁘면 당청정이 삐걱거린다는 비판을 받는다. 선거 때는 한 몸이던 대통령과 여당이 선거 후엔 예외 없이 모호한 관계로 변하니 국정이 순탄하게 굴러갈 리 만무하다.

내가 런던 특파원으로 3년간 목격한 영국의 의원내각제에서는 적어도 이런 모순은 없다.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돼 행정부를 총괄하니 당정 관계가 어떠니,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관계가 어떠니 하는 말이 나올 수 없다. 국회의 총리 임명 동의나 장관 인사청문회 같은 게 없으니 선거 다음 날 곧바로 새 정권이 산뜻하게 출범할 수 있다. 장관이 곧 총리의 보좌진이니 총리실이 비대할 필요가 없다. 장관들이 모두 현역 의원인 데다 국회에서부터 관련 분야를 오래 다뤄 왔기에 총리와 손발이 잘 맞고, 업무와 소통 능력에서도 문제가 없다. 정당 중심의 선거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니 사람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정당정치가 가능하다.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덜할 수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은 당선 후 취임 때까지가 가장 행복하고 취임과 동시에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임기 내내 이런 모순들과 씨름하느라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허비해야 한다. 거의 예외 없이 인사와 소통의 덫에 걸려 허우적댄다. 지켜보는 국민도 피곤하다. 이런 상황을 헤치고 과연 성공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는 박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고장 난 제도를 뜯어고치면 좋겠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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