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韓中日, 실학정신으로 과거 딛고 미래를 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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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연구자들, 대표 실학자 99인 담은 연구총서 9월에 동시 발간

우리나라 대표 실학자 33명에 선정된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서계 박세당, 순암 안정복, 여암 신경준의 초상화(왼쪽부터). 한국실학학회 제공
우리나라 대표 실학자 33명에 선정된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서계 박세당, 순암 안정복, 여암 신경준의 초상화(왼쪽부터). 한국실학학회 제공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우경화 행보로 동북아시아에 냉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한중일 학자들이 ‘실학(實學)’으로 화해를 모색한다. 동북아시아 3국의 문화적 접점으로서 실학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언종 한국실학학회 회장(고려대 교수·사진)은 “한중일 실학 연구자들이 모여 각국의 대표 실학자 99명에 대한 평전 형식의 연구서를 올 9월 발간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동아시아 실학자들에 대한 연구서가 3개 국어로 동시에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회장은 “실학은 한중일이 개혁 사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3국이 공유할 수 있는 사상적 접점으로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책 제목은 ‘한중일 실학사상가 사전(事典)’으로 한국실학학회와 중국실학연구회, 일본동아시아실학연구회의 학자 99명이 참여해 각자 한 명씩 대표 집필을 맡게 된다. 국가별로 33명의 실학자를 선정해 이들의 생몰연도와 가족 관계, 생애, 주요 저작, 핵심 사상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방식이다. 3국 연구자들은 책 출간 직후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상 실학자 수를 100명이 아닌 하필 99명으로 정한 사연이 시의성과 맞물려 흥미롭다. 요즘 동북아 정세를 반영하듯 3국 학자들 사이의 묘한 ‘밀당(밀고 당기기)’의 결과라는 것. 2년 전 도쿄에서 처음 논의가 오갈 때 유학의 본류를 자처하는 중국 학자들은 실학자 100명 가운데 자국 출신을 절반 이상 쓰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나라와 일본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결국 각국이 공평하게 33명씩 나눠서 소개하고 실학의 뿌리인 공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한 명의 자리를 비워 놓기로 했다. 다산 정약용도 저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공자를 꼽았다.

한중일 3국 실학의 공통점은 체제 전환 혹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근대화를 맞아 주자 성리학의 한계를 깨닫고 개혁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산과 성호 이익의 실학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중국 고염무(顧炎武·1613∼1682)와 황종희(黃宗羲·1610∼1695),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 청초의 대표 학자들로 명나라가 망한 이유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다산이 따로 저작을 구해 읽었다는 일본의 17세기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1627∼1705)와 오규 소라이(荻生조徠·1666∼1728), 다자이 슌다이(太宰春臺·1680∼1747)도 주자학을 반대하고 공자 사상의 원류로 돌아가 현실을 개혁하자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대표 실학자 33인 명단에는 다산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과 서계 박세당, 초정 박제가, 이익, 농암 유수원, 풍석 서유구 등 유명 학자들은 물론 빙허각(憑虛閣) 이씨(1759∼1824)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실학자도 포함돼 있다. 이 씨는 19세기 초 ‘규합총서(閨閤叢書)’를 통해 음식 조리부터 누에치기, 옷 짓는 방법, 응급처치, 약물 제조법 등 다양한 실용 지식을 총망라했다.

이와 함께 책에 수록된 손암 원중거(1719∼1790)는 연암학파이자 조선통신사 출신으로 18세기 조선에서 일본학을 개척한 인물이다. 서파 유희(1773∼1837)는 훈민정음 연구를 집대성하는 등 국어사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이 밖에 하곡 정제두(1649∼1736)는 주자성리학에 대한 대안으로 양명학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김 회장은 “당대 실학이 ‘통정사통(痛定思痛·지난날의 고통이나 실패를 반성하는 것)’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21세기를 맞은 동아시아 3국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여는 데 실학적 가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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