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명박 회고록에서 다시 확인된 北의 정상회담 속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0시 00분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관계는 냉랭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퍼주기식 대북 정책을 수정한 것에 대해 북한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막후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원했고 비밀 접촉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북한이 무리한 대가를 요구해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전 대통령이 다음 주 출간하는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공개한 비화를 보면 남북 대화를 대규모 지원을 얻어내는 흥정거리로 여기는 북의 행태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타계 때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는 이 전 대통령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얘기를 꺼냈다. 며칠 후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우리 통일부에 쌀과 비료 지원 등을 전제조건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해 왔다. 그해 10월 김양건과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데 이어 북한은 11월 옥수수 10만 t과 쌀 40만 t, 비료 30만 t, 북한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등을 요구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정일이 나를 계속 만나려는 목적은 남북 화해와 통일이 아닌 초지일관 김씨 왕조의 권력을 지키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남북 정상회담의 유혹을 뿌리치고 북한이 내민 계산서를 거부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우리 측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자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는 유감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쌀 50만 t 지원을 요구했다. 우리 젊은이 4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사죄는커녕 유감 표명의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는 태도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북한의 버릇을 잘못 들인 탓도 크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정상회담의 대가 1억 달러를 포함해 모두 5억 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을 4개월 앞두고 2007년 정상회담에서 대규모 경협 추진에 합의했다.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 이후 강력한 대북 제재에 나서고 있는 미국이 성 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3년 차인 올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업적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럴수록 북한의 속내를 냉철히 들여다봐야 한다. 북한 주민들을 돕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수 있는 지원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대규모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내는 남북 정상회담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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