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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기획] 박경호 선생 “결승전, 즐기고 느끼고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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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기획] 박경호 선생 “결승전, 즐기고 느끼고 만끽하라”

스포츠동아입력 2015-01-30 06:40수정 2015-01-3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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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포츠동아DB

■ 토요일 토요일은 축구다

1956년 1회 아시안컵 우승 박경호 선생, 55년 만에 우승 도전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31일 오후 6시 호주와 아시안컵 결승전

“처음 본 호텔 양변기를 세숫대야로 생각할 정도였지만, 누구도 불편해 하지 않았어. 그런 정신력으로 첫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던 것 같아. 요즘 2002년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있어. 결승은 아무나 붙잡을 수 있는 무대가 아니야. 서로의 전력도 모두 나왔잖아. 마지막 한판, 정말 즐겁게 뛰어놀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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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잠시 잊자. 이번 주말만큼은 ‘토토축(토요일 토요일은 축구다)’이다. 무려 55년을 기다려온 한국축구의 아시아 정상 탈환이 임박했다. 축구국가대표팀은 토요일인 31일 오후 6시(한국시간) 시드니 올림픽파크 내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개최국 호주를 상대로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전을 치른다. 양국은 조별리그(A조) 3차전(17일·브리즈번)에서 이미 한 차례 격돌했다. 1·2차전까지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한국은 당시 파죽지세의 흐름을 타던 호주를 1-0으로 꺾고 상승세로 돌아섰다. 그리고 돌고 돌아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은 아시안컵 통산 3번째, 호주는 첫 우승을 노린다. 운명의 여신은 과연 어디로 미소를 보낼까. 결전을 앞두고 한국축구의 아시안컵 도전사를 되돌아보고, 대망의 결승에 임하는 태극전사들의 표정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을 앞두고 원로축구인 박경호(85) 선생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1930년 황해도 해주 태생의 박 선생은 1946년 월남 이후 경신중학교에 입학해 축구를 시작한 한국축구의 산증인이다. 특히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2승1무(4개국 풀리그 방식)로 당당히 정상에 섰을 당시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후배들의 차례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태극전사들이 31일 벌어질 개최국 호주와의 결승에서 새로운 전설에 도전한다. 반세기 전 한국축구의 영광스러운 역사의 서막을 연 박 선생을 직접 만나 아련한 추억의 이야기를 들었다.

● 즐기고, 느끼고, 만끽하라!

팔순이 넘은 박 선생은 정정했다. 지팡이는 짚었지만 허리는 꼿꼿했고, 걸음걸이 역시 당당했다. 어지간한 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직접 이동한다. 3년간(1956∼1958년) 태극마크를 달았고, 7년간 성인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우승 멤버 18명 중에선 박 선생을 포함해 3명이 생존해 있다. 현역 은퇴 후에는 경희대와 한양공고를 거쳐 건국대∼육국사관학교∼서울대 축구부 감독을 맡아 후배들을 육성했다. 그 뒤 축구협회 이사와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 방송 해설위원, 일본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 기술고문 등을 역임해 행정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래도 요즘처럼 즐거울 때는 없다고 했다. 우리 모두에 뭉클한 기억으로 남은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감동을 다시 느끼는 듯하다고 털어놓았다. 손자뻘인 까마득한 후배들이 아시안컵에서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기다리고 또 기다린 아시아 정상의 순간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박 선생이 태극전사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즐기고, 느끼고, 만끽하라”고 했다. “아주 어렵게 잡은 기회라는 생각에 부담도 크겠지만, 결승 자체를 즐겼으면 해. 더불어 결승전 분위기를 느껴야겠지. 또 어떤 결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만끽했으면 좋겠어. 승패와 상관없이 가진 실력을 다 쏟아낸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한다면, ‘만끽할’ 자격도 충분히 있지 않겠어? 물론 지금까지 아주 잘해왔지만.”

조심스러운 전망도 덧붙였다. 박 선생은 긍정적이었다. 선수들을 고루 활용했다는 부분에 높은 점수를 줬다. “승부를 예단할 수는 없어. 다만 국제대회에 젊은 친구들이 전부 투입되고, 잘 뛰는 걸 보며 느낌이 좋았어. 독일 감독과 직접 의사 소통이 가능한 친구들(손흥민·차두리 등)도 꽤 많고.”

껄끄러운 이란과 일본을 완전히 피했다는 부분도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짚었다. “예선과 토너먼트를 하면서 전력은 다나왔어. 어려운 상대들을 우리가 힘 들이지 않고 따돌렸다는게 얼마나 좋아. 부담도 줄었고. 결승에서 정말 즐겁게 뛰어 놀았으면 좋겠어.”

●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아시나요?

박 선생과의 만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면 1956년 9월 6일부터 15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컵 이다. 당시 해외여행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요즘은 홍콩까지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그 때는 자유중국(대만)을 경유하는 항공편이 전부라 거의 12시간이 걸렸다.

마침 자유중국과 2차 예선을 치렀다. 예상 시나리오는 예선 탈락. 모두가 선수단이 자유중국에서 귀국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본선에 올랐다. 자유중국에서 홍콩으로 향하는 KNA(대한항공 전신)을 다시 이용해야 했는데, 주 1회 운항밖에 없어 하염없이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타이베이에서 자유중국과 연습경기를 치러 그 수입으로 비행기 삯을 마련하려던 계획도 폭우 때문에 무산됐다. 이미 자유중국으로 오는 삯을 외상으로 한 터라, 대표팀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결국 숙박비 절약을 위해 타이베이 외곽의 일본식 여관에 머물다 대회 개막 당일 아침에야 홍콩에 도착 했다.

“비행기 1등석이 무슨 말이야? 아주 열악했지. 처음 본 호텔 양변기를 세숫대야로 생각할 정도로 일행도 무지했고. 그런데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았어. 그런 정신력으로 첫 우승 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 같아.”

에피소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축구화 징을 박는 커다란 해머를 들고 홍콩공항 입국장을 통과하다 한참 동안 붙잡혔고, 경기 도중 쏟아진 빗줄기에 단벌 유니폼의 붉은 염색이 흘러내려 핏물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보다 못한 홍콩교민이 여벌 유니폼을 구입해 기증했다. 의료장비도 붕대에 물 주전자가 전부였다. 선수 교체도 없어 다리를 절룩이는 부상자가 풀타임을 소화했다.

“외국에 나가면 기념품을 사와 되파는 게 유행이었는데, 홍콩 화장품은 20배로 되팔 수 있었어. 난 자명종 시계를 몇 개구입했는데, 김포공항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선 꼭 우승해야 했지. 만약 패했으면 세관 통과 못하고 물건들도 몽땅 빼앗겼을걸. 그냥 이겼어. 그렇게.”

그런데 박 선생은 빛바랜 흑백사진 몇 장과 흐릿한 기억으로만 59년 전 아시안컵을 떠올리고 추억했다. 선수들에게 수여된 초대 대회 우승 메달을 잃어버린 탓이다. “결혼 예물도 별 감흥 없던 내가 (메달을) 매일 씻고 닦으며 아끼니까 집안일을 돕던 분이 훔쳐갔어. 아쉽냐고? 그렇진 않아. 메달은 내 인연에 없었나봐.”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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