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구본무 LG’ 20년과 재계 3, 4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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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LG그룹은 1995년 2월 회장 이임식과 취임식을 함께 열었다. 한국 재계 초유의 일이었다. 구인회 창업자를 이은 2세대 구자경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3세대인 구본무 회장이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50세였던 구 회장은 취임사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저마다의 능력과 창의를 마음껏 펼치는 회사, 진정한 프로들의 회사, 공정하고 합리적인 회사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달 취임 20년을 맞는 구 회장은 좌절도 겪었다. 경영을 맡은 지 3년도 안 돼 닥친 외환위기가 1차 시련이었다. 각별한 애정을 쏟은 반도체 사업을 정부의 ‘빅딜’ 압박으로 포기해야 했던 1998년의 아픔은 컸다. 2004년 초 경영난에 시달리던 LG카드에서 철수하는 수모도 맛봤다.

그렇지만 ‘구본무 LG’ 20년의 종합 성적표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GS LS 등이 LG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그룹 연매출은 30조 원에서 150조 원으로, 임직원 수는 10만 명에서 22만 명으로 증가했다. 디스플레이, 중대형 2차전지, 편광판은 세계 1위에 올랐다.

구 회장은 연구개발(R&D) 행사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직접 참석해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R&D 인력도 대폭 늘었다. 무기(無機) 나노소재 권위자인 이진규 서울대 교수가 최근 LG화학 수석연구위원으로 옮긴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고 대란(大亂)’ 소문이 무성하던 2008년 구 회장은 한국 재계사(史)에 기록될 족적을 남겼다. 그는 “사정이 어렵다고 함부로 사람을 내보내거나 안 뽑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동아일보 뉴욕특파원인 부형권 기자가 특종 보도한 이 발언의 파장은 컸다. 몇 달 뒤 어느 대기업 임원은 내게 “우리 그룹도 대규모 감원 계획을 세웠지만 그 발언이 보도된 뒤 취소했다. 사실 나도 그 혜택을 입은 사람”이라고 했다.

형제끼리도 돈 분쟁으로 홍역을 치른 기업이 많지만 LG는 이런 잡음에서 자유롭다. GS LS 등의 계열 분리 과정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했고 지금도 우호적 관계가 이어진다. 한때 일본에서는 ‘인덕(仁德) 경영’이라는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됐다. 다른 기업 총수들도 장점이 있지만 구 회장은 우리 재계에서 인덕 경영에 가장 근접한 기업인이 아닐까 싶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기내(機內) 횡포’ 이후 일부 재계 3, 4세의 빗나간 행태가 국민의 공분을 샀다. 30대 그룹 오너가(家) 3, 4세들은 입사 후 임원 승진까지 평균 3.5년 걸렸고 20대에 ‘별’을 단 사례도 많다. 반면 구 회장의 양자이자 LG 4세대인 구광모 상무(37)는 입사 후 8년이 넘은 작년 말 ‘초짜 임원’이 됐다. 구 상무의 경영 능력은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사내외의 처신을 둘러싼 뒷말은 들리지 않는다. 연령이나 연륜의 차이는 있지만 재계 3, 4세들이 구 회장 부자(父子)를 벤치마킹하면 본인도, 기업도 치명상을 입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포스코 같은 대기업은 때로 비판도 받지만 누가 뭐래도 질 좋은 일자리와 국민적 자부심을 제공하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른 기업도 잘되길 바라지만 나는 ‘구본무 LG’가 글로벌 경쟁력과 인덕 경영을 겸비한 기업 발전 모델을 성공시키길 소망한다. 일정 부분 전쟁터 같은 기업에서 ‘따뜻한 가슴’의 한계를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 시가총액만 올리면 된다는 ‘잭 웰치식(式) 경영’에 대한 환상은 지구촌에서 이미 깨졌다. 인간을 존중하면서 기업 경쟁력도 강한 모범 사례가 한국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아직은 버리지 못하겠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LG그룹#구본무#글로벌 금융위기#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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