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보바리 부인과 서초동 가장의 속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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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개인의 자살이나 살인 사건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가 돼 버렸지만 여전히 그것은 세상의 끝처럼 느껴진다.

‘서초동 세 모녀 사건’은 처음엔 가장 강모 씨(48)가 생활고에 몰려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한 비극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부촌’인 서초구에 11억 원짜리 아파트와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서울 명문대를 나와 5년 전에 연봉 9000만 원을 받았던 것, 마지막 직장에서 전무로 일했던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전혀 다른 범행 동기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비록 실직하고 주식 투자로 2억7000만 원을 날린 암담한 상황이긴 했지만 남은 재산을 처분해서 다시 시작하는 길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동아’에 실린 그의 사정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아 부인에게 매월 생활비로 400만 원씩을 주었고 딸은 연회비 80만 원을 내고 요가 학원을 보냈다. 강 씨는 매일 아침 ‘출근’했다. 적어도 겉으로 그의 집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강 씨가 출근해 혼자 앉아 있었던 곳은 고시원의 가장 싼 구석방이었다. 그는 가족이 그동안 누리던 생활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만이 가장의 의무라 여기고, 자신의 실직이 곧 딸들의 ‘희망 없는 미래’라 마음대로 단정 지었다.

이 사건에서 귀스타브 플로베르 소설의 주인공 보바리 부부를 떠올린 건 이것이 한 시대의 끝과 개인의 심리적 붕괴를 함께 보여주는 듯해서다. 보바리 부부의 파멸은 흔히 부인의 불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보바리 부인이 청산가리를 먹은 건 사채와 돌려 막기 끝에 닥친 재산 차압 때문이다. 의사로는 인정받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산 적도, 살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남편 샤를은 부인이 자살하자 어린 딸을 남긴 채 무기력하게 죽어 버린다. 요즘이라면 ‘의사 부인 생활고 자살 사건’으로 불렸으리라. 농촌에서 그럭저럭 부르주아지의 삶을 살 수도 있었던 보바리 부인이 빚에 시달리게 된 건 현실을 잘못 걸려든 ‘우연’으로 부정하고 귀족의 삶을 흉내 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처럼 섬세한 사람이라면 귀족처럼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 소식을 담은 패션지를 구독해 ‘신상’을 사 입고 애인에게 명품을 선물하고 오페라를 보러 다닌다. 그녀의 욕망을 사채업자가 부추긴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 쥘 드 고티에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이라 분석한 ‘보바리즘’이다.

‘서초동’ 가장 강 씨가 ‘보바리즘’의 희생자인지 혹은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처럼 고생 한 방울조차 모두 ‘내가 겪어 다행’이라 생각한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플로베르의 소설에 남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빼앗아 그 후로 행복하게 살게 된 자본주의의 진짜 주인공들이 등장하듯, 우리 사회에도 ‘실직이 곧 파국’인 중산층의 불안과 보바리즘을 교묘히 이용해 권력을 쥐고 막대한 부를 얻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서초동 가장의 비극에 보바리 부인이 겹쳐진 진짜 이유다.

보바리 부인은 ‘파리’라는 단어가 발음될 때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환청을 겪는다. 파리에서 살지 못하느니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젊은이들의 꿈이 된 삼성과 권력의 핵 검찰과 법원과 슈퍼울트라급 교회들이 모인 서초구를 지날 때 중산층 욕망의 순수한 결정체가 하늘에서 빛나는 환상을 본다. 이곳에 살았던 가장 강 씨도 그 빛을 믿었던 것은 아닐까.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보바리 부인#서초동 가장#서초동 세 모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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