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현금 많다” 범죄 1호 타깃… 무서운 필리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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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생 피격중상 이어 일행 4명 피랍 나흘만에 풀려나

한국인 4명이 필리핀에서 납치된 지 나흘 만에 풀려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대학생이 괴한의 총격을 받은 지 하루 만에 한국인 대상 범죄가 또 필리핀에서 일어난 것이다. 필리핀은 2013년부터 한국인 범죄 피해가 가장 많은 국가로 떠올랐지만 관계 당국의 안전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일가족 납치 4일 만에 석방


외교부는 27일 “필리핀에서 22일 납치된 우리 국민 4명이 26일 오후 11시 30분경(한국 시간) 풀려났다”며 “현지 경찰이 피해자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납치범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현지에서 온라인 사업을 하는 조모 씨(35)와 처남 강모 씨(34), 강 씨의 친구 김모 씨(34), 조 씨의 동서 김모 씨(45) 등은 22일 마닐라 북쪽 산후안 시에 있는 온라인 도박 관련 사업장에서 괴한에게 납치됐다. 괴한들은 이들을 붙잡고 몸값을 요구했으며 일부 몸값이 지불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강 씨의 아버지가 22일 경찰에 “사위 두 명과 아들이 필리핀에서 납치됐는데 사위 둘은 총살됐다”고 신고하면서 인명 피해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억류된 4명은 구타당한 흔적 외에 큰 부상 없이 돌아왔다. 필리핀에서는 앞서 25일 중부 바콜로드의 한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던 한국 대학생 박모 씨(22)가 괴한 1명에게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진 사건도 발생했다.

○ 한국인 대상 범죄, 3년 만에 8배로


경찰 안팎에서는 잇따르는 필리핀 내 한인에 대한 범죄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범죄 피해자가 된 사건은 2010년 94건에서 2013년 780건으로 급증했다. 2013년 필리핀은 중국(598건)을 제치고 한국인 대상 범죄 1위 국가가 됐다. 그해 필리핀에서 살해당한 한국인은 13명, 행방불명된 사람도 24명에 달했다. 2014년에도 10명 이상의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력범죄 발생 추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필리핀에서 실종된 홍모 씨(30) 등 한국인 2명이 암매장 상태로, 4월에는 여대생 이모 씨(23)가 마닐라에서 택시에서 납치된 후 한 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죄 급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한국인 증가’가 꼽힌다. 외교부 측은 “필리핀 체류 한국인이 8만 명인 데다 1년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어 한국인 대상 범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사에 필수적인 지문(指紋) 제도가 없고 폐쇄회로(CC)TV 설치 비율이 낮아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검거하기 어렵다. 특히 필리핀 국내에는 100만 정 가까운 총기가 유통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지 한국인 중 적지 않은 수가 범죄 도피자인 점도 범죄 증가에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2011년 현대캐피탈 고객 175만 명의 정보를 빼내 물의를 빚은 신모 씨(41·검거)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거주 한국인 해커나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 등 범죄에 연루된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음성적인 돈을 벌기 위해서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금전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경찰청장도 ‘수뢰’ 직무정지


필리핀 수사 당국과의 공조도 여의치 않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당초 지난해 12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필리핀을 3박 4일간 찾을 예정이었다. 필리핀 내 한국인 대상 범죄가 급증하면서 현지 경찰청장을 만나 치안 협력회의를 열고 교민 간담회도 개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필리핀 경찰청장이 수뢰 혐의로 직무가 정지되면서 방문이 취소됐다. 필리핀에서 무역업을 하는 교민 A 씨(48)는 “필리핀에서는 경찰이 뇌물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납치 단체와 공조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경찰은 필리핀 경찰청에서 한국인 범죄를 담당하는 파견경찰(경감급)인 ‘코리안 데스크’를 2월 중 한 명 더 늘려 두 명으로 확대한다. 하지만 실무자 파견으로 필리핀 내 한국인 대상 범죄 증가세를 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재명 jmpark@donga.com·조숭호 기자
#필리핀#필리핀 한인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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