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노유선]청춘, 움츠리지 않으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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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선 전 동아일보 인턴기자
노유선 전 동아일보 인턴기자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순간을 기억한다. 처음 혼자서 연필을 잡고 내 이름을 써 내려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분명 자전거 뒷부분을 아버지께서 붙잡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난 아버지 도움 없이 쌩쌩 달렸다. 아버지의 큰 손에 기대어 연필을 잡고 이름 한 글자씩 써 내려가다가, 쓱싹쓱싹 연필심 긁는 소리가 반복되다가, 끝내 혼자만의 힘으로 이름 세 글자를 적어 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전거와 연필을 정복하며 난 새로운 세계에 입성했다.

난 하루빨리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어른요”라고 답했던 초등학생이었다. 부모님의 도움에서 벗어나 내 입맛대로 일상을 만들어 간다는 자유로움이 나를 설레게 했다. 마침내 대학에 들어가자 삶에서 내 의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70∼80%를 넘어섰다. 부모님의 울타리가 투명 울타리가 됐을 무렵 꿈에도 그리던 ‘청춘’이 시작됐다.

청춘이 생각만큼 달지 않고 쓰디쓰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생이 내 의지대로 나아가던가. 알 수 없는 변수도 많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남자친구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 겨우 직장을 잡았다 싶으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반복적으로 읊조리게 되고, 내 적성과 수준에 맞게 잘 찾아온 것인가 의심도 든다. 경제적으로 독립해 소위 ‘어른’이 되는 고지에 오르는 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영역이다. 이젠 자전거 밀어 줄 손도, 연필 잡아 줄 손도 없다. 그야말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청춘들은 이 불확실한 나날을 극복해 내는 법을 몰라서 오늘도 멘토 특강을 들으러 부단히 움직인다.

어쩌면 청춘이 초조하고 불안한 건 아주 자연스럽다. 넘어야 할 또 다른 허들이 눈앞에 있는데 태연해질 운동선수가 과연 있을까? 그러니 멘토의 조언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헛다리 짚게 만들 공산이 크다. 각자 다른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른 인생이기에 인생이 주는 문제는 다를 수밖에 없고 해결 방법도 다를 것은 자명하다. 문제를 혼자서 골똘히 마주하다 보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할 것이다. 그때마다 오답 노트를 정리해 두는 것이 멘토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가치 있을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청춘을 ‘자폐의 시간’이라고 명명했다. 자폐는 자기 자신에게 비정상적으로 몰입한 상태를 뜻한다.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골몰한 적 있었던가. 청춘은 어쩌면 세월이 ‘허용한’ 자폐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쓴다면 적성·능력에 맞는 일, 취미생활들이 가지치기될 것이다. 가지치기를 하고 오답 노트를 얻은 청춘은 그 다음 허들 앞에서 움츠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자전거와 연필을 잡아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노유선 전 동아일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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