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경수]한자(漢字)를 한자(韓字)라고 부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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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漢字)는 중국에서 쓰는 글자를 말한다. 이제 이 명칭을 한자(韓字)로 불렀으면 한다. 삼한시대 이래로 한(韓)이라는 글자는 한반도 지명에 두루 써 왔다. 아침 햇빛이 찬란한 곳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한자는 같은 어원에서 와서 외형은 같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소리나 뜻이 다르다. 가령 동서(東西)는 중국에서는 물건이지만 우리는 방향이라는 뜻이다. 경리(經理)도 중국은 사장이나 우리는 회계 업무를 맡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글자 모양이 같다고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漢字)라고 표기해 왔다.

우리 조상들은 한자(漢字)를 빌려 향가라는 노래를 적었다. 향찰(鄕札) 문자가 그것이다. 기록하되 우리 식으로 독창성을 발휘했다. 한자의 음과 훈을 교묘히 섞어 표기했다. 이런 식으로 8행, 10행의 가사를 적은 것이 향찰 문자다. 삼국유사에 14수나 전해 온다.

또 삼국사기 본문의 첫 문장은 시조성박씨(始祖姓朴氏)로 시작한다. ‘시조의 성이 박씨’라는 뜻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 편찬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이때부터 사용해 온 시(始) 조(祖) 성(姓) 박(朴) 씨(氏) 글자 하나하나가 한문 문장에서 독립해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다른 단어로 파생돼 우리말의 척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예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고문헌에 쓰인 모든 한자가 다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적(典籍)의 해석에 매몰돼 독립된 낱글자 연구에 소홀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낱글자의 한자가 얼마나 쓰였으며 이 글자들이 어떻게 생멸하는지 관심이 적었다. 국어 연구에서는 낱글자인 한자 연구가 필수적이다. 독립적으로 쓰이는 낱글자를 조사·분석해 생몰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말에는 일본으로부터 서양어의 번역어가 많이 들어 왔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의 숫자다. 이 말들도 우리말 사전에 수록돼 훌륭한 우리말로 쓰이고 있다. 이들도 한자(韓字)라 함이 마땅하다. 거기다 우리는 격조 높은 한글도 가지고 있다. 세계의 문화유산 중에도 이런 보물이 흔치 않아 보인다. 아무리 빛나는 한글이라도 한자(韓字)와 더불어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활용할 때 더욱 그 문자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제 한글과 더불어 한자(漢字)도 한자(韓字)라 부를 때가 왔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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