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31>‘전원생활의 불청객’ 권태, 어찌하오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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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하순의 강원 홍천군 시골 마을 전경. 귀촌이든, 귀농이든 전원생활을 하다 보면 대개 권태와 맞닥뜨리게 된다. 박인호 씨 제공
1월 하순의 강원 홍천군 시골 마을 전경. 귀촌이든, 귀농이든 전원생활을 하다 보면 대개 권태와 맞닥뜨리게 된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솔직히 눈 한번 내리고 나니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이 깨지더군요.”

지난해 11월 중순 강원도 시골에 소담한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한 D 씨(60). 매일매일 어린아이와 같은 설렘과 기쁨으로 전원의 축복을 노래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그 열기는 확 식었다. 한 뼘 넘게 쌓인 눈을 손수 치워 보니 ‘전원생활은 낭만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서울과 강원도를 홀로 오가며 전원생활을 해온 H 씨(56)는 귀촌 4년 차다. 이태째부터 시골을 찾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번 겨울엔 아예 발길을 끊었다. 그의 고백이다.

“첫해는 매주 금요일만 되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짐을 꾸리곤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냥 무덤덤합니다. 막상 내려와도 외롭고 심심해요. 전원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거지요.”

이처럼 전원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일정 기간마다 반복해서 찾아오는 ‘권태’라는 이름의 불청객과 맞닥뜨리게 된다. 정도의 차가 있을 뿐 피해 가긴 거의 어렵다. 전원생활 1년 차는 ‘낭만’이지만 2년 차는 ‘실망’이요, 3년 차는 ‘절망’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주변을 보면 전원생활의 권태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야 하는 귀농인보다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춰 전원생활 자체를 즐길 여력이 더 있는 귀촌인들에게 오히려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D 씨와 H 씨의 사례에서 보듯 전원생활 초기에는 농촌과 자연의 모든 것이 신비하고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은 반감되고 결국 고독과 무료함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화·의료시설 부족 등 생활의 불편함도 한몫 거든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귀촌 인구는 2만1501가구로 귀농(1만923가구)의 갑절가량 된다. 2012년에 견줘 36%나 늘었다. 2014년에도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서울 등 도시에 그대로 살면서 주말에만 전원의 세컨드하우스를 찾는 이들을 더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귀촌보다 정도는 덜하다고 해도 귀농 또한 권태의 늪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귀농한 지 10년이 넘은 J 씨(56)는 “지난해는 풍작이었지만 가격이 급락해 농사를 망쳤다. 소득에 자신이 없어지니 권태가 밀려오고 한동안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토로했다.

전원생활의 권태가 살짝 왔다가 가 버리면 다행이지만 우울증으로 연결된다면 이건 큰일이다. 자칫 전원생활의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 그럼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먼저 전원행(行)의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그냥 남 따라서, 아니면 퇴직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상황에서 도피하듯 시작한 전원생활은 오래지 않아 권태의 늪에 빠지기 쉽다.

전원행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자연이 주는 진정한 쉼, 즉 힐링과 안식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이를 제대로 얻고자 한다면 돈 명예 편리함 등 도시의 가치는 점차 내려놓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권태를 불러올 수 있는 전원생활의 단순함과 소박함 불편함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발적인 가난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 또한 필요하다.

또 하나. 전원생활의 시작부터 가급적 가족(부부)이 함께하는 게 좋다. 사실 전원의 권태와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나 홀로 시골행을 강행한 남편들이다. 2013년 귀촌가구의 54.7%, 귀농가구의 57.8%가 나 홀로족(族)이다. 여러 속사정이 있겠지만 혼자만의 전원생활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전원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주변에 귀농·귀촌한 이웃과 함께 음악 목공예 산행 등 취미 활동과 품앗이를 함께 하면서 생활의 활력과 전원 상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지역별 귀농·귀촌협의회의 모임이나 각종 행사에 참여해 활동하는 것도 권태가 스스로 비켜 가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

꼭 권태 때문은 아니더라도 행여 전원 정착에 실패할 때를 대비한 ‘출구 전략’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출구 전략의 초점은 결국 전원에 소유한 땅과 집의 손쉬운 처분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려면 애초 입지를 선택할 때 전원의 쾌적성은 기본이고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복선전철역 주변 등 도시 접근성이 좋은 곳을 골라야 한다. 또 집(대지 포함)은 2억 원대 이하로 작지만 건강에 좋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실속 주택이 매매에 유리하다.

이미 전원에 살고 있는 이들은 물론 예비 귀농·귀촌인들도 이 전원의 권태를 미리 잘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행복한 전원생활을 맛볼 수 있기에.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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