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은행 점포 줄일때 “일요일도 영업” 치고나온 TD뱅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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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혁신비즈니스, 현장을 가다]<中>은행도 차별화 승부

TD뱅크는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문을 여는 파격적인 영업 형태로 미국 금융업계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주 7일 영업(Open 7 Days)’이라고 적힌 녹색 간판은 ‘가장 고객 편의적인 은행’을 지향하는 TD뱅크의 역발상 혁신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TD뱅크는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문을 여는 파격적인 영업 형태로 미국 금융업계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주 7일 영업(Open 7 Days)’이라고 적힌 녹색 간판은 ‘가장 고객 편의적인 은행’을 지향하는 TD뱅크의 역발상 혁신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 미국은 어떻게 대형은행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 금융기관들이 꿋꿋하게 골목상권을 지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당 지역과 주민들에 대해 쌓아놓은 수십 년의 전문성과 노하우 덕분이다. 한국의 마을금고에 해당하는 소규모 은행들에서 일하는 전문 매니저들은 “우리는 고객들 집 숟가락 수까지 알고 있다”고 자랑한다. 》

2008년 전 세계에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초강대국의 자존심을 구긴 미국의 금융산업은 대형은행들이 규제와 감시에 묶여 주춤하는 사이 서민생활에 모세혈관처럼 파고든 혁신 금융업을 선보이며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은행이 TD뱅크다. 이 은행의 모토는 ‘가장 오래 문을 여는 은행’이다.

일요일인 이달 18일 정오경 뉴욕 맨해튼 49가에 있는 TD뱅크 지점에 가보았다. 은행 외관이나 내부 구조는 특이할 게 없었지만 건물 밖에서부터 ‘주 7일 영업(Open 7 Days)’이란 큰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번에는 ‘19일 마틴 루서 킹 목사 데이에도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술집조차 밤에 문을 여는 곳이 드문 미국에서 공공기관과 공립학교가 모두 쉬는 연방정부 법정 공휴일에도 문을 연다는 게 이색적으로 보였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남자 직원을 붙잡고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한 뒤 “우리나라 은행들은 ‘평일 5일 영업’이 일반적인데 주 7일에다 공휴일까지 영업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은행이 손님들에게 가장 자주,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당신이 더 편리해지려면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다. 그것의 출발이 다른 은행들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문을 열자는 것이다. 고객 만족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다. 지점마다 애완견용 비스킷까지 비치하고 있다.”

TD뱅크는 1년 365일 중 부활절, 독립기념일, 성탄절 등 대형마트조차도 쉬는 딱 7일만 문을 닫는다. 하루 영업시간도 점포마다 차이가 있지만 월∼금요일 오전 7시 반에 개점해 오후 7시에 문을 닫고 토요일에도 오후 4시까지 영업한다. 일요일은 낮에 4시간 정도(보통 오전 11시∼오후 3시) 연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 비에너에서 자동차 수리점을 하는 앤절로 마틴 씨는 “우리 수리점은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데 종종 금융거래를 할 일이 있다. 유일하게 TD뱅크가 일요일에 영업한다는 말을 최근에 듣고 주거래은행을 곧바로 TD뱅크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을 파고든 영업 방식으로 이 은행은 미국에 둥지를 튼 지 10여 년 만인 2014년 말 기준 총자산 2430억 달러(약 262조 원), 지점 1300여 개, 직원 2만6000여 명으로 ‘미국 내 10위(톱10) 은행’으로 훌쩍 컸다.

TD뱅크는 지난해 미 전역에 34개 지점을 새로 여는 등 다른 은행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감축하는 ‘오프라인 점포’를 오히려 증설하고 있다. 한국의 7대 은행이 지난해 총 237개 지점(전체의 5.6%)을 폐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아시아계 은행 뉴욕지점장은 “TD뱅크의 독특한 영업 형태가 뱅크오브아메리카, 체이스 같은 초대형 은행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유동인구가 많은 뉴욕 주의 상가 밀집지역 지점에서 부분적으로 ‘일요일 영업’을 개시했다. 월가 등 금융계에선 “꼬리(후발 은행)의 혁신이 몸통(초대형 은행)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했다.

한편 요즘 미국에선 20, 30대 젊은 고객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심플(Simple)은행의 성공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이 은행은 오프라인 점포를 늘리는 TD뱅크와는 정반대로 지점이 아예 없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지점이자 은행이다. 더 나아가 ‘각 고객의 맞춤형 재무관리자 또는 금고지기 역할’을 자임한다.

이 은행 앱의 ‘세이브 투 스펜드(Save-to-Spend)’ 기능은 개인의 자산 현황을 토대로 세금 납부, 자산 리모델링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써야(납부해야) 할 돈이 얼마인지’ ‘오늘 마음 편히 써도 되는 돈은 얼마인지’까지 알려준다. 뉴요커인 커틀러 브라운 씨는 “나는 심플의 광팬이다. 돈 계산을 잘 못하는데 심플 앱 덕분에 경제생활의 체계가 잡혔다”고 말했다. 심플은행은 출범 3년 만인 지난해 고객이 12만 명을 넘었고 금융거래 규모도 20억 달러(약 2조1500억 원)에 육박했다.

2008년 이후 각종 규제가 많아진 금융업에서 어떻게 이런 혁신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을까. 금융인들은 한결같이 ‘기업가 정신’을 말했다. 체이스은행 뉴욕지역 룰루 스틸레스 매니저는 “규제 탓만 하면 어떤 변화나 혁신도 할 수 없다. 결국 금융기관들의 경쟁은 ‘주어진 상황(규제)에서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선 해리스 메릴린치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내에는 상호가 다른 은행이 무려 600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은 타깃을 분명히 해서 특화된 서비스를 계속 찾아내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은 흔히 ‘산업의 피’라고들 한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포함해 서민생활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반으로 한 금융상품은 고스란히 가계와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밑바닥 경제를 돌게 하는 활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TD뱅크#미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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