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연]이슬람과 빛의 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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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올해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빛의 해’다. 일주일 전인 19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 빛의 해 개막식이 열려 85개국의 ‘빛 과학자’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광학회 소속 과학자들이 참석해 한국에서 열릴 빛 관련 행사를 소개하고 돌아왔다.

유네스코는 매년 과학적인 주제를 잡아 ‘세계 ○○의 해’로 정한다. 작년엔 결정학의 해였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가 결정의 구조를 알 수 있는 X선 회절현상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지 1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빛의 해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대표적으로 올해는 아랍에서 빛 연구를 꽃피운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하이삼이 ‘광학의 서(書)’라는 책을 펴낸 지 딱 1000년이 되는 해다. 오랫동안 과학기자를 했는데도 알하이삼이나 광학의 서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부끄럽게도 기자조차 뇌리에 남아 있는 ‘아랍에서 유래된 과학’은 아라비아숫자 정도다.

중세시대는 ‘과학의 암흑기’로 불린다. 사실 정말로 암흑기였을까. 중세시대 역시 사람이 살았고,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가 번성했던 아랍은 훨씬 더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알하이삼이 쓴 책은 한 예일 뿐이다.

아랍의 과학이 유럽을 월등히 넘어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다. 1453년 아랍의 맹주였던 오스만 제국은 당시 존재하던 것보다 2배나 포신이 긴 대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맹렬한 포격 끝에 1000년이나 버텼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굳건한 성벽을 무너뜨린다.

오랫동안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배워서인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불행한 테러 사건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는 이슬람 문화가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당시 이슬람 문화는 중세 유럽보다 훨씬 더 관용적이고 개방적이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에 사용된 거대한 대포도 사실은 지중해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의 한 기술자를 초청해 만든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슬람에서 발전된 과학과 문화는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유입됐다.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화와 과학을 오히려 이슬람 지식인들이 잘 보존해 다시 전달해 준 사례도 많았고, 훗날 화학의 바탕이 된 연금술 또한 아랍에서 상당한 이론적 토대를 갖춘 뒤 유럽으로 넘어갔다. 이들이 훗날 서양의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의 시작에 큰 힘을 보탰다.

세계 빛의 해 행사장에서는 과학자 알하이삼에 대한 특별전시장도 함께 문을 열었다. 현지 행사를 다녀온 후배 기자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으로 긴장이 역력한 파리였지만 전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고 전한다. 이날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고 참석한 유네스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역시 “아랍 과학자가 저술한 책이 서구 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븐 알하이삼은 아랍인만의 친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친구”라고 말했다. 파리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테러와 최근 일본인과 관련한 안타까운 소식은 이슬람이 과거 보여준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세계 빛의 해를 맞아 부디 ‘예언자’의 뜻이 왜곡되지 않고 빛처럼 순수하게 세상에 퍼지기를 바란다.

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dream@donga.com
#이슬람#유네스코#세계 빛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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