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너의 목소리가 들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4대 구조 개혁으로 30년 번영 터 닦겠다는 대통령
동시 추진 쉽지 않은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분야는 교육
그중에서도 ‘교육기아’ 해소
버려진 가출 청소년 22만명… 그들의 소리없는 구원요청에
정치권도 귀 기울여야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박근혜 대통령의 구조개혁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분야의 4대 구조개혁을 통해 30년 번영의 기초를 닦아 놓고야 말겠다”며 개혁 의지를 다져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과연 자신의 임기 내에 4대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을까. 현정택 신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23일 “4대 개혁은 하나하나가 모두 폭탄이다”라고 말했다. 비장한 각오를 피력하느라 한 발언이겠지만 뒤집어 보면 하나하나가 그만큼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진단이기도 하다.

만약 4대 개혁의 동시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어느 개혁부터 우선적으로, 그리고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까. 답은 교육 개혁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진국 진입의 문턱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을 통한 양질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 형성 덕분이었다. 인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교육 훈련 경험으로 체득하는 지식과 기술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인적 자본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 양극화다.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저생산성의 ‘교육 비만(肥滿)’에 빠져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저소득층 자녀, 탈북 청소년, 가출 청소년(14∼19세) 등은 ‘교육 기아(飢餓)’로 신음하고 있다.

‘교육 비만’과 ‘교육 기아’ 중 어느 게 더 해로울까. ‘교육 기아’가 훨씬 더 해롭다. 힘들긴 해도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한 과체중 아이처럼 ‘교육 비만’은 제도적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교육 기아’는 치료가 어려울뿐더러 그 후유증이 평생을 간다. 빈곤과 범죄라는 이름의 이 후유증은 청소년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두고두고 큰 비용을 발생시킨다.

‘교육 기아’ 증세는 가출 청소년에게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김영하 작가는 2012년에 발표한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가출 청소년의 비극적인 생활상을 파헤쳐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작년 5월 경남 김해에서 발생한 가출 여고생 살해 암매장 사건은 현실이 소설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는 현재 거리를 떠도는 가출 청소년이 2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10여 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들을 수용할 청소년쉼터의 수용 인원은 모두 합해 봐야 15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가출 청소년들은 ‘가출팸(가출+패밀리)’을 이뤄 매춘 절도 갈취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딴 데로 고개를 돌린다. 국민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바람에 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30년 번영의 기초를 닦고 싶다면 이것부터 구조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가출 청소년에게는 돌아갈 가정이 없거나 있다 해도 끔찍한 곳이다. 그런 그들에게 쉼터와 함께 적절한 교육 및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야 30년 뒤의 빈곤과 범죄를 막고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 확보와 더불어 정치권의 협조가 절실하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 관련 예산으로 작년에 14조8927억 원을 지출했다. 관련 정책을 시작한 2006년에 비해 7배 이상 증가한 예산이다. 하지만 재작년 신생아는 43만6500여 명으로 2006년에 비해 오히려 1만1700여 명이 감소했다. 이렇듯 태어나지도 않을 아이들을 위해 헛돈을 쓰는 대신 태어났으나 버림받은 ‘교육 기아’ 청소년들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하라. 그게 더 도덕적이고 인적 자본 형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정치권과의 공통분모를 찾아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라. 새누리당의 사회적경제특별위원장인 유승민 의원 등 67명의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에 대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호의적이다. 정부가 잠재적 대졸 실업자들을 ‘교육 기아’ 청소년들의 멘토로 지정해 지식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형태로 묶어 예산을 지원한다면 이 법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정치권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의 4대 개혁 의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폭탄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중요한 교육 개혁부터 내실 있게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며 ‘교육 기아’ 청소년에게 관심을 쏟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구조개혁#교육#가출 청소년#사회적경제기본법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