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투자 늘려야” 기업 “규제 풀어야”… 핑퐁게임에 허송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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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현장, 여전히 삐걱]
나홀로 호황 美… 한국은 0%대 성장률
崔부총리 - 대한상의 간담회서도 “경제혁신 팀플레이” 공감했지만
고용-규제개선 놓고 평행선… 국내총투자율 해마다 곤두박질

“경제혁신 골든타임”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에서
 세 번째)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신박제 NXP반도체 회장, 박흥석 광주상의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기업인 30여 명이 참석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경제혁신 골든타임”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에서 세 번째)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신박제 NXP반도체 회장, 박흥석 광주상의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기업인 30여 명이 참석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기업들이 적극적인 고용과 투자로 경제혁신과 발전에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 혁신을 위해선 정부가 2단계 규제개혁부터 추진해야 한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부와 기업인들이 2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나 한목소리로 경제 개혁을 위한 ‘팀플레이’를 외쳤지만 각자 내놓은 실천방안은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 있다. 정부의 ‘선(先) 투자 확대, 후(後) 경제 활성화’ 기조엔 변함이 없다. 재계도 ‘선 규제 개혁, 후 투자 확대’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이 자국(自國) 기업 살리기 정책과 적극적인 민간투자가 맞물려 경제 성장에 탄력을 받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 위기에는 공감

대한상의가 최 부총리를 초청해 이뤄진 이날 정책간담회에는 박 회장 외에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인원 롯데그룹정책본부 부회장, 심경섭 ㈜한화 사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터라 이날 간담회에는 재계 안팎의 큰 관심이 쏠렸다.

최 부총리나 기업인들 모두 지금이 한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에는 공감했다. 최 부총리는 “국내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제대로 된 구조개혁을 한 적이 없다”며 “경제혁신은 시대의 소명이자 선택지 없는 외나무다리”라고도 강조했다. 박 회장은 “30년 성장을 내다보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수립해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총생산(GDP) 분기 성장률은 2013년 2분기(4∼6월)와 3분기(7∼9월)에 전년 동기 대비 1% 이상 성장했지만 그해 4분기(10∼12월)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0%대 성장률에 머물렀다.

○ 말뿐인 팀플레이

일각에서는 이날 간담회에서 정부의 획기적 기업친화정책이나 기업들의 공격적 투자계획 공개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기업들에 투자 및 고용을 요청하고 기업들은 규제개선을 건의하는 판에 박힌 모습만 재연됐다.

최 부총리는 “정부는 여러 정책수단을 강구해 올해 3.8% 경제성장률, 고용 45만 명, 물가 2% 상승 등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부터 밝혔다. 또 “정부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기업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특히 새롭게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을 적극 고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박 회장은 “경제계는 정부가 2단계 규제개혁을 적극 추진해 주기를 희망한다”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국민 설득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또 정부에 임금체계 개편,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제정, 지방 투자규제 완화, 기업소득환류세제 기준 완화와 가업상속 지원제도 개선, 노동시장 구조개혁 추진 등 5대 정책과제를 건의했다. 한마디로 기업들의 노동비용 및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사업구조 재편이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달라는 얘기다.

○ ‘내가 먼저’가 필요한 시점

정부와 기업들이 수년째 “네가 먼저”식 핑퐁게임을 하는 사이 국내 투자 실적은 지속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총투자율은 2011년 32.9%에서 2012년 20.9%, 2013년 28.8%로 매년 떨어졌다. 지난해는 1∼3분기 누적 투자율이 29.7%였지만 집계 중인 4분기 투자 실적까지 더하면 전년보다 더 하락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2013년 7월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지만 기업들의 투자 환경에 온기를 불어넣지는 못했다. 수도권 규제 등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덩어리’들을 없애지 않은 채 ‘투자 독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투자나 고용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1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경제가)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고 당부한 사실이 알려진 뒤 재계에선 ‘위기 속 고용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적도 있다.

전광우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는 “한국 사회의 한 축인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해야 고용과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며 “기업으로서도 불확실성이 큰 지금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투자 적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준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도 “국내 기업들은 파이를 키울 생각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파이 속에서만 투자든 고용이든 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김호경 기자
#경제#혁신#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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