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현대重 희망퇴직 칼바람… 한숨 쉬는 40대 家長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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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사회부
정재락·사회부
휴대전화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가끔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는 듯 “푸∼” 하는 소리도 들렸다. 40대 후반이라는 현대중공업 사무직 중간간부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23일 오후. 회사가 ‘인력구조 개선 대상자’(희망퇴직자) 1380명의 명단을 통보한 지 10일이 지난 뒤였다. 그는 “회사 측에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한 뒤 말을 이어갔다. 평사원 때는 우수사원상을, 과장 때는 우수과장상을 받았다는 그는 “팀장(부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나쁜 등급을 받아 이번에 포함된 것 같다”고 말했다.(회사는 지난해 하반기 평가에서 5등급 중 하위 C, D등급을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는 “말로는 희망퇴직이지만 사실 강제퇴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상자로 선정된 뒤 회사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1월 말까지 사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컴퓨터 시스템 차단→책상 등 집기 치우기→무보직 대기발령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내쫓기 프로젝트’를 상세하게 들었다. “월급 30개월 치를 위로금으로 받지만 이걸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폐가 좋지 않아 3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요즘은 하루 1, 2갑씩 피운다”고 말했다. 사무직이라 변변한 기술도 없는 그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경영적자가 1조9000억 원(그룹 전체 3조2000억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조(위원장 정병모)는 “지난해 적자는 사우디아라비아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1조 원, 해양설비 공사 과정에서 4000억 원, 세미리그선 건조과정에서 5000억 원이 발생했다”며 “이는 경영진이 현지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신규 공사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적자”라고 반박했다. 또 “이번 인력구조 개선은 경영진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려는 조치”라고 밝혔다. 회사는 “지금 인력구조 개선을 하지 않으면 공멸하기 때문에 경영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는 있다.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가장이 20년 근무한 회사에서 내쫓겨 거리로 내몰려야 하는 세태는 원인이 어디에 있든 ‘비정상’이다. 이 40대 가장에게서 “직장을 구해 담배를 끊었다”는 목소리를 과연 들을 수 있을까.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미포만에는 요즘 매서운 겨울바람과 희망퇴직자들의 무거운 한숨이 교차하고 있다.

정재락·사회부 raks@donga.com
#현대중공업#희망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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