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동전 한닢, 고대로마 일상과 욕망을 증언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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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알베르토 안젤라 지음/김정하 옮김/540쪽·까치·2만 원

고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가 동전을 쥔 모습을 담은 삽화. 이 책은 동전의 유통경로를 따라 로마와 속주 곳곳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렸다. 까치 제공
고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가 동전을 쥔 모습을 담은 삽화. 이 책은 동전의 유통경로를 따라 로마와 속주 곳곳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렸다. 까치 제공
서기 2세기 초반 영국 런던. 로마 동전을 가득 실은 수레를 이끌고 기마대가 강을 건넌다. 2000년이 흐른 뒤 영국인들이 ‘템스’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강이다. 로마 군인들이 강물 위 나무다리에 들어서기 직전 누군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순간 다리 한가운데가 위로 들리면서 아래로 포도주를 가득 실은 화물선 한 척이 유유히 지나간다. 신기하게도 이 다리는 1894년 지어진 런던의 관광 명물 ‘타워 브리지’와 거의 동일한 지점에 있었다. 심지어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다리가 위로 열리는 구조까지 같았다는 게 최근 영국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 저자는 “고대 로마에서 런던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그 핵심 지역이 오늘날 영국의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고 썼다.

이 책은 마치 미국 드라마 ‘로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불륜을 저지르며 주술사에게 남편의 죽음을 부탁하는 유부녀와 결혼 지참금을 노리고 부유층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젊은 남자들,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그리스 상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전 로마인들의 욕망과 일상의 삶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는 전작인 ‘고대 로마인의 24시간’(까치)에서처럼 이번에도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기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고고·역사학 기록을 행간에 풀어 넣었다. 특히 책 속 인물은 무덤이나 고대문헌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로 로마시대 문학작품을 근거로 줄거리를 재구성해 사실감을 높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로마를 출발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이집트 등 로마제국의 광범한 속주를 누비며 당시 생활상을 고증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1만5000km에 달하는 이 긴 여정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동전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원제목이 ‘한 닢 동전의 제국 여행기’인 이유다. 아피아 가도로 상징되는 로마의 우수한 도로망을 쉴 새 없이 오가며 2000년 전 ‘팍스 로마나’를 일궜던 건 다름 아닌 로마의 화폐였다.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기반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요즘과 비슷한 이치다.

이 책은 곳곳에서 로마의 사회상이 21세기와 별 차이가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서 로마는 동시대 다른 지역의 추종을 불허했다.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에 이르면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이 이혼할 권리가 있었고 남편의 간섭 없이 재산을 처분할 수 있었다.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는 풍자 시집에서 “마치 몽둥이로 맞아 바닥으로 떨어진 뱀처럼 여자는 술을 마시고 토한다. 이런 추태에 남편은 진저리를 치며 눈을 찌푸리면서도 분노를 삭이려고 애를 쓴다”고 적었다.

세계제국을 꿈꾼 히틀러나 나폴레옹, 스탈린과 달리 로마가 수천 년을 영속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로마인들이 권력과 힘의 전략을 효율적이고 균형감 있게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힘이 있다고 마구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진되는 반면 권력은 잘 사용할 경우 빠르게 강화되며 비용도 적게 든다. 로마인들은 고대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지만 이를 외과의사처럼 신중하게 사용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동전 한닢#고대로마#알베르토 안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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