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대통령 욕조 주문서까지 보관하는 미국, 문서 9억장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1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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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놋쇠 프레임으로 된 초대형 침대 1세트 ②초대형 스프링 매트리스(초강력 스프링) 1조 ③초대형 베개 1조 ④초대형 침대 받침대 ⑤길이 165㎝에 폭이 아주 넓은 초대형 욕조 1개’
이 주문서에는 미국 해군 소속 마셜 함장의 자필 서명이 담겼다. 작성된 날짜는 1908년 12월21일. 윌리엄 태프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운하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자 군함을 타기 전, 선실에 필요한 물품 주문서였다. 키 180㎝, 몸무게 150㎏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뚱뚱했던 그에게 꼭 필요한 여행준비물이었다. 이 주문서는 공문서이자 국가기록물로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국가공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다. “문서 한 장으로 미국사이의 맥을 잇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겨준 겁니다. 국가기록물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지요.” ‘대통령의 욕조’(삼인)의 저자 이흥환 씨의 설명이다.

‘대통령의 욕조’는 미국의 국가기록물 이야기다.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 관련 디지털자료를 수집하는 코리아정보서비스넷(KISON)의 편집위원으로 일해 온 이 씨가 내셔널 아카이브를 드나들면서 찾아본 기록들을 한데 모았다. 내셔널 아카이브에는 독립선언서, 헌법, 권리장전의 원본부터 1868년 알래스카를 사들이면서 러시아에 지불한 720만 달러짜리 수표, 발명왕 에디슨의 전구특허 신청서까지 내셔널 아카이브에 보관된 다양한 문서들이 소개된다.

“미국의 국가기록 시스템은 기록과 보관, 공개라는 세 개의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잘한 일뿐 아니라 잘못한 일도 적어야죠. 그래야 후대의 사람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써놓은 것은 보관돼야 하고요. 보관해둔 것은 다 같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9억 장에 가까운 문서가 들어 있는 내셔널 아카이브는 누구나 찾아와 문서를 뒤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흥환 씨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공적 문서’뿐 아니다.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남자의 봉급 내역서, 2차 세계대전 때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했던 부상당한 한 사내의 진료 내역 등 장삼이사들의 기록도 남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개인적인 기록물들이 길지 않은 미국의 역사를 풍성하게 한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책에는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찾은 한국 관련 문서 59건도 소개됐다. 1952년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과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록, 1973년 한국의 민감한 정치상황에 관해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 사이에 오간 문서 등이 있다.

이 씨는 “100여 년 전 대통령의 욕조 제작 주문서 같은 빛바랜 문서를 소중하게 보관하는 모습에서 미국이 국가기록을 어떻게 대하는지 헤아릴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까지 기록을 하고, 이렇게까지 기록을 대접하는 나라가 있구나, 뼈저리게 느낀 것들을 써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기록물을 공개하는 데 유연하기를, 작은 개인사도 소중한 기록으로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음은 물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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