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 1분전까지 갔던 그때…오늘 한반도 시계 초침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1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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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시 1분전’
마이클 돕스 지음·박수민 옮김

새해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희망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최근 인류 문명의 대붕괴에 대한 디스토피아의 시나리오가 더욱 과학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은 우리를 연초부터 우울하게 한다. 얼음이 잘 얼지 않는 한강을 익숙하게 여기는 것처럼, 성큼 다가온 기후변화의 징후를 보고도 인간의 합리성을 낙관하는 이들은 1962년 발생했던 인류의 절체절명 위기 순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구소련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맞서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위기다. 현재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53년만의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기대감으로 들떠 있어 그때의 악몽은 잊은 듯 보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저자가 미국, 쿠바, 러시아 등 관련 국가의 자료를 모아서 꼼꼼하게 검증해 ‘쿠바 미사일 위기’의 순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쿠바에 주둔한 소련군 수비대가 전술 핵무기 98개를 이미 보유했던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전면 침공을 심각하게 검토했었다. 벼랑 끝 전술의 귀재인 피델 카스트로 쿠바 서기장은 당시 미국-소련 간의 물밑 협상을 모르고 미국의 침공이 임박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핵 선제공격을 압박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카스트로 정권 교체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뉴욕에 테러 자작극을 기획했다. 이 위기의 순간 ‘피스메이커’ 케네디와 흐루시초프 두 리더가 군부 강경라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오늘날 그토록 매혹적인 도시인 아바나와 뉴욕은 물론, 지구의 상당 부분이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제목 ‘0시 1분전’은 핵전쟁 위기를 경고하고자 미국의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운명의 날’ 시계가 인류 멸망 1분전까지 갔음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이었던 이 사건에 대해 서구 학계는 무수한 연구물을 쏟아냈다. ‘0시 1분 전’은 그중에서도 걸출한 설명으로 꼽힌다. 수 년 전 이 책을 원서로 주문해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던 기억에 필자는 이 책의 번역 소식이 너무나 반갑다. 저자는 많은 기록들을 비교해가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방대한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 대위기의 파노라마를 완벽히 재현해 낸다. 이런 점에서 이 논픽션은 매혹적인 스릴러다.

그렇다고 이 책을 흥밋거리로만 즐길 수는 없다. 한반도의 위기 혹은 극적인 평화 수교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막연히 한반도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등골이 서늘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합리적으로 보이는 리더들 간의 상호 게임이 수많은 우연과 실무자들의 실수 속에서 어떻게 핵미사일 단추를 향해 다가가는지를 섬뜩하고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속 미국과 쿠바를 서울과 평양에 대입해 보면서 한반도의 시계 초침이 몇 시를 가리키는지 궁금해지고, 섬뜩해질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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