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자 처벌… 美 ‘디지털 감시단’ 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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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세차장에서 일하던 크리스 링컨 씨는 최근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사장은 “수십 명이 전화를 걸어와 인종차별주의자인 링컨을 해고하라고 압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발단은 링컨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흑인 비방 글이었다. 그는 이 글로 인해 디지털 감시단(Digilante)인 ‘인종차별자 해고시키기’의 표적이 된 것이다.

디지털(Digital)과 감시단(vigilante)을 합친 ‘디지털 감시단’은 여론재판을 통해 도덕적으로 벌을 주자는 인터넷 운동이다. 2013년 한 미국 여성이 만든 텀블러(블로그의 일종) ‘인종차별자 해고시키기’는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글을 검색한 뒤 글쓴이의 신상을 공개해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한편 직장에까지 이메일과 전화로 해고를 종용했다. 개설 첫날 4만 명 이상이 팔로잉했으며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해고시킨 사람이 12명이나 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인터넷에 갇혀 있던 디지털 감시단이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비슷한 사례는 영국에도 있다. 스틴슨 헌터 씨(31)는 2013년부터 ‘소아성애자 헌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트위터 계정에 가짜 소녀 프로필을 올린 뒤 접근해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소아성애자를 가려내 경찰에 넘기고 있다. 지금까지 15명이 그의 덫에 걸려 기소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는 최근 후원금을 모아 직원을 채용하고 책까지 펴냈다.

한국도 ‘개똥녀’ ‘막말녀’ 등 사건이 터지면 해당 인물의 신상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부상하는 디지털 감시단은 △단발성 사안이 아닌 특정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체계적 연대를 통해 △해고 요구 등 현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서 신상털이 수준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는 최근 인천 어린이집 원생 폭행사건 이후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시작된 ‘폭행교사 리스트 공유’ ‘상임위에 항의전화 넣기’ 등의 오프라인 운동이 여론을 움직여 구속 수사와 법안 수정까지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 감시단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다. 감시단의 표적이 되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린 링컨 씨는 19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단편적 정보로 개인이 개인을 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찬성론과 지나친 감시라는 부정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인종차별#미국#인종차별 디지털 감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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