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지금 아니면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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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의 항구도시 나폴리를 흔히 파르테노페라고 부른다. 바다의 요정 세이렌 중 하나인 파르테노페는 노래 실력이 어찌나 빼어나던지 뱃사람들이 넋을 잃고 듣다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는 자기 몸을 돛대에 묶어 그 치명적 유혹에서 살아남았다. 좌절한 파르테노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래의 여신이 잠든 곳답게 나폴리는 이탈리아 민요의 고향이다. ‘오 나의 태양’이라는 뜻의 민요 ‘오 솔레미오’는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0년 ‘이츠 나우 오어 네버(It‘s now or never)’로 편곡해 발표했다. “지금 같은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아요.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원곡보다 노골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팝송 음반은 세계적으로 1000만 장 넘게 팔렸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53)도 ‘나우 오어 네버’를 말한 적이 있다. “죽음 앞에서 옳다고 생각하면 지금 해야지 나중에 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우 오어 네버’라는 인생철학이 생긴 거죠.” 2006년 미국 탐사여행 중 자동차 사고로 목 아랫부분이 마비됐을 때 얘기인 듯하다.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강단에 선 그는 2012년 나우 오어 네버 정신으로 40일간 보통 사람도 하기 힘든 미국 횡단 지질탐사까지 다녀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노래를 거론했다. 그제 ‘국가 혁신’ 관련 정부 부처 합동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다. “노래도 그런 게 있죠. ‘나우 오어 네버’인가. 사랑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대통령은 “‘조금 목표가 다르지만’ 어쨌든 각 부처의 새해 과제도 ‘나우 오어 네버’”라고 강조했다. 여자를 유혹하듯,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각오로 매진해 달라는 주문이다. 진돗개, 단두대, 암 덩어리 같은 거친 용어를 구사하던 대통령이 이번엔 달콤한 팝송을 빌려 장관들을 독려한 점이 흥미롭다. 나우 오어 네버, 지금이 유일한 기회란 메시지는 임기 3년 차를 맞은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온 국민의 절박한 바람이란 사실도 기억해주면 좋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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