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고교시절 전교 우등생… 클럽에 빠져전교 꼴찌 하지만 후회는 없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월 23일 06시 55분


김정남(오른쪽)은 ‘토토가’ 노래방 촬영 후 “통편집되겠구나” 생각했다. 나이트클럽에서 하던 그대로를 가감 없이 보여줘 방송에는 부적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노래방 장면은 스타 탄생의 서막이었다. 왼쪽은 김정남과 함께 터보의 멤버로 활약한 김종국. 사진제공|MBC
김정남(오른쪽)은 ‘토토가’ 노래방 촬영 후 “통편집되겠구나” 생각했다. 나이트클럽에서 하던 그대로를 가감 없이 보여줘 방송에는 부적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노래방 장면은 스타 탄생의 서막이었다. 왼쪽은 김정남과 함께 터보의 멤버로 활약한 김종국. 사진제공|MBC
■ ‘토토가’로 다시 주목받는 터보 김정남

터보 탈퇴 후 홀로 나이트클럽 행사
공인중개사로 제 2인생 살려했지만
음악 떠난 내 인생엔 우울증만…
토토가 후 ‘형님’하며 다가오는 넥타이부대
터보 출신이란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예전엔 교복부대가 무서웠는데, 이젠 넥타이부대가 무섭다. 젊은 남자들이 ‘형니∼임’ 하며 다가오는데…. 하하.”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터보 출신 김정남(43)은 요즘 외출하기가 좀 불편해졌다. 자신을 알아보고 “막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들”을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깜짝스타’가 된 그는 “목적지를 한 번에 가는 건 타겠는데, 이젠 갈아타는 건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김정남은 지난달 방송된 ‘토토가’ 노래방 편에서 혼자 나이트클럽 행사를 다니는 모습을 재연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사람,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증을 갖게 했다.

“‘예능 기대주’라 하는데, 난 20년 전부터 그랬다. 하지만 터보는 신비주의 가수였다. 일부러 선글라스 쓰고 다니고, 예능도 안했다. 매체 인터뷰에서도 미리 준비한 대답만 했다.”

김정남이 터보를 탈퇴하고 홀로 나이트클럽 행사를 다녔다는 사실에 ‘안쓰럽다’는 시선도 있지만 “사실 터보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더욱이 그 시절 나이트클럽은 “아무나 설 수 없는, ‘10대 가수’ 정도 돼야 나설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나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썼다. 특히 무대에서 내려오면 허무함에 빠졌고, “좋은 술집 가서, 동생들 다 불러서” 술을 마셨다.

김종국과 마이키의 터보가 해체하면서 ‘터보 출신’ 김정남에게도 타격이 왔다. 터보가 해체했으니, ‘터보 출신’ 프리미엄도 사라졌고 일 하자는 곳도 줄었다. “경매 전문가가 돼보라”는 누나의 권유에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다. 마흔이 다 돼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 참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우울증이 시작됐다. ‘내가 평생 해오던 것을 버렸다’는 안타까움이 원인이었다. 다행히 정신과 치료로 3개월 만에 끝냈다. ‘현역이 아니더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지인과 록카페식 클럽을 차렸다. 의견충돌로 2개월 만에 관뒀다. 돈이 없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남자가 돈이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때 어렵기도 했지만 생활고라는 건 잘 모르겠다. 아직 미혼이고,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는 생각이다. 다만 솔로 앨범 제작비를 대느라 대출 받은 부모를 생각하면 돈을 벌긴 해야겠다.”

‘토토가’로 아직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나와 달라’는 방송프로그램, ‘만나자’는 매체도 많아졌다. 또 터보로 섭외 받는 일도 많다.

“방송에서 불러만 주면 하루에도 20개 스케줄을 할 수 있지만, 터보로서 섭외는 김종국에 일임했다. 종국이도 자기 일로 바쁜데 나로 인해 불편해지면 안 된다. 그래도 예전엔 ‘터보 아니냐’ 물어보면, ‘아, 예 예’ 하면서 혼자 짠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터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 1등을 했다. 당시 의성에서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안동이나 대구로 유학을 갔지만, “서울로 보내라”는 담임교사의 권유로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의 중학교에서도 “잘 했을 땐 반에서 4등, 평소 10∼15등”을 했다. 고교 때도 전교 2등을 한 번 했을 정도다. 그러나 중학 시절, 집에서 TV보며 흉내 내던 춤은 고교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난리’가 날 정도의 명성을 얻게 했다. 이를 계기로 나이트클럽에 빠져 결석이 잦아지면서 전교 꼴찌까지 내려갔다. 20살에 종로에서 클럽DJ로 활동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 남성 3인조 제갈민과 울랄라로 데뷔했다.

“그래도 나의 어릴 적 꿈은 검사였다.”

김정남은 이런 인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지만 “아들 공부시키려고 서울로 이사 온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끓었겠느냐”며 미안해했다. 어머니는 사나흘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는 아들을 위해 늘 화장대 서랍에 1만원을 놓아두곤 했다. 그래도 그는 “술 담배 안하고, 나쁜 짓도 안 했다. 겁이 많아서 싸움도 못 한다”며 웃었다.

김정남은 아직 미혼이다. 과거 한 모델과 오래 사귀긴 했지만 지금은 7년째 싱글이다. 이상형은 키 큰 여자로, 178cm가 하한선이란다. 이는 김종국의 신장이기도 하다. 여자 이야길 하면서 김정남은 “가만 보니 내가 생활고를 느끼는 유일한 때가 여자를 만나고 싶을 때”라며 또 크게 웃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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