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금은 증세 아닌 ‘세금복지’ 축소를 논의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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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론이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소급입법으로 세금을 되돌려 주려면 다른 곳에서 세수(稅收)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며 ‘부자 감세’ 철회와 법인세 인상을 촉구했다. 반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법인세 등의 증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새누리당 분위기는 엉거주춤이다. 이완구 원내대표 등 상당수 의원이 법인세 인상에 반대했지만 나성린 의원(당 정책위 부의장)은 “국민 대타협을 통한 증세 논의도 필요하다”고 자락을 깔았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공약한 박근혜 정부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 같은 직접적인 증세 대신 비과세 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지출 구조조정 방식의 재원 마련 방침을 내걸었다. 그러나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 효과는 미미했고, 재정지출은 구조조정은커녕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인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으로 비과세 감면 축소 역시 조세저항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앞다퉈 내놓은 ‘무상복지’라는 이름의 ‘전면적 세금복지’는 대규모 증세 없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공짜복지는 없다. 증세 외에는 국채(國債)를 발행해 나랏빚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미 위험수위에 육박한 재정현실을 감안하면 세금복지를 위한 국채 발행은 한국의 미래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제는 본격적인 증세를 통해 세금복지 또는 국채복지를 계속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무상보육 무상급식 같은 전면 세금복지 지출을 과감하게 줄이느냐의 선택만 남았다.

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과 ‘부자 증세’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현실에서 법인세를 올리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경쟁력과 실적,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황을 부추겨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위험이 크다.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이 법인세만은 낮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도 근로소득 상위 3%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50%를 부담하는 반면 70% 이상의 봉급생활자가 면세점 이하이거나 각종 공제 혜택으로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상황이다. 또 상위 1%의 대기업이 법인세의 86%를 부담한다. 한국의 기형적인 담세(擔稅)구조를 더 왜곡하는 것도 옳지 않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대선 전과는 달라졌다. 한국갤럽의 작년 말 여론조사에서 66%가 ‘재원을 고려해 선별적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폐해 많은 증세 논의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전면적 세금복지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할 때다. 최 부총리는 설령 정치권의 압박이 커지더라도 자리를 걸고 “증세는 없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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