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이 논술 채점-첨삭… 인터넷서 베낀 모범답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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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논술 학원의 ‘불편한 진실’

역대 최악의 물수능’ 논란 속에 학원가는 논술 특수를 맞았지만 논술 지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수시 논술을 보기 위해 몰린 수험생들. 동아일보DB
역대 최악의 물수능’ 논란 속에 학원가는 논술 특수를 맞았지만 논술 지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수시 논술을 보기 위해 몰린 수험생들. 동아일보DB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역대 최악의 물수능’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학원가에서는 올해 재수생 규모가 역대 최고에 이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올해도 쉬운 수능이 예상되면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재학생과 재수생 가릴 것 없이 논술 사교육에 매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바람을 타고 학원가에서는 겨울방학 논술 특강이 성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물론이고 논술 사교육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고액 논술 사교육이 엉망”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 모범답안 돌려쓰고, 대학생이 대충 첨삭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학습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오르비’에 최근 논술학원 실태에 관한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2014학년도 입시에서 5개 대학의 논술전형에 합격했다는 이가 논술학원에서 5개월간 첨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문제점을 쓴 글이었다.

그는 △평범한 국문과 졸업생 수준인데도 명강사 소리를 들으며 터무니없이 비싼 강의료를 받고 △첨삭은 대부분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써서 대충 하고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자료와 출처도 모르는 모범답안을 돌려쓰는 것이 최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 강사는 강의 하나에 몇십만 원씩 받으면서 수업 15분을 남기고 ‘강의 준비를 하나도 못했다’며 웃더라”면서 “논술학원에 몇백만 원을 투자하거나, 지방에서 무리해서 서울 유명학원을 찾아와 기숙생활을 하는 이들이 안타까워 쓰는 글”이라고 밝혔다.

고액 논술학원의 부실 강의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원 강사가 아니라 단기간 고용된 아르바이트생들이 수강생의 논술 답안지를 채점하고 첨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고3 학생은 “논술전형에 합격한 다음 날 한 논술학원에서 ‘답안지 첨삭 알바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더라”면서 “입시를 준비하며 나도 논술학원에 다녔는데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단 걸 알고 배신감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대치동 논술 강사 출신인 임모 씨는 “다른 과목과 달리 논술은 강사들의 실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며 “학생들이 쓴 글을 대충 훑어보고 빨간펜으로 문장 몇 개와 오탈자를 지적하는 수준에 그치는 불량 강사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학원들끼리 수업자료를 돌려쓰는 일도 고질적인 문제다. 한 학원이 수업에 사용한 논술 지문이나 모범답안을 다른 학원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식이다. 서울의 한 고교에 재학 중인 김모 군(18)은 “학원에서 준 문제와 모범답안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는데 출처도 없이 한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고 말했다.

○ 부르는 게 값

부르는 게 값인 고액 수강료도 문제다. 논술학원들은 대부분 수강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상담을 받으러 와서 등록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게만 알려준다. 또 수시로 ‘○○ 선생 특강’ ‘○○대 맞춤강의’ 식의 특강을 만들어서 수강료를 기준 없이 정하곤 한다.

현재 대치동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논술학원 두 곳 역시 수강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강생들을 통해 파악한 학원비를 보면 학기 중에는 한 달에 50만 원 안팎이다. 수능에 임박해 개강하는 ‘파이널 강좌’는 2주에 100만 원, 방학에 이뤄지는 특강은 통상 10회 기준에 회당 10만 원 정도로 껑충 뛴다.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치르는 모의고사도 한 번에 10만 원 수준이다.

현행법으로는 학원들이 수강료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교육부가 내년부터 수강료를 학원 입구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학원들의 반발이 심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주요 학원들의 학원비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지만 오래전 수강료가 일부 올라온 수준이라 이용자가 거의 없다. 수험생들은 “학원이 자체 홈페이지에 알기 쉽게 수강료를 공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의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 독서력을 폭넓게 평가하겠다며 도입한 논술이 ‘사교육의 주범’으로 전락하면서 대학 입시에서 논술을 폐지하라는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논술전형으로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한 이지현 씨는 “각 대학 논술 문제를 보면 학교에서 배운 내용으로는 절대 답안을 작성할 수 없다”며 “특히 이과의 수리나 물리 논술은 고교 범위를 벗어나서 사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논술 채점#알바생#고액 논술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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