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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박근혜 대통령과 문체부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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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박근혜 대통령과 문체부의 악연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5-01-22 03:00수정 2015-01-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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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3개월 뒤 태권도 비리 발생… 청와대의 개혁 지시에 미온 대응
국가대표들 “감사원이 조사해야”
정윤회 개입설 불거지며 일파만파로 지지율 추락
실제보다 부풀려진 내용으로 박근혜 정부에 불운 안겨줘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균열이 생긴 것은 언제, 어디서부터일까. 시계를 되돌려 보면 집권 3개월 만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작됐다.

정권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28일 태권도 관장인 전모 씨가 자살했다. 그의 아들은 태권도 선수였다. 자살하기 보름 전 경기에 출전한 아들은 경기 종료 50초 전까지 5 대 1로 앞서다가 심판의 계속된 경고로 억울한 패배를 당한다. 편파 판정은 경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시중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박 대통령은 곧바로 체육단체 비리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문체부에 지시한다. 승부 조작 등 체육계의 불공정 행위가 구조적 병폐라고 본 것이다. 문체부 유진룡 장관은 한 달여 뒤인 7월 23일 국무회의에서 개선방안을 보고한다.

박 대통령과 문체부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이었다. 박 대통령은 다시 약 한 달 뒤인 8월 21일 유 장관에게 문체부의 체육 담당 국장과 과장을 거명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며 경질을 지시했다. 이후 2099개 체육단체에 대한 특별감사가 이뤄져 지난해 1월 결과가 발표된다.


이 문제는 ‘정윤회 딸’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벌써 잊혔을 것이다.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정 씨의 딸은 당시 고교 2년생 승마선수였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모든 체육단체가 감사 대상에 올랐으므로 정 씨 딸이 소속된 승마협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청와대로부터 승마협회를 따로 조사하라는 지시가 문체부에 내려왔다고 한다. 청와대가 정 씨와 가까운 승마협회 간부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 씨와의 연관설이 불거질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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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은 문체부의 울타리를 넘어 퍼져 나갔다. 이전까지 정윤회라는 이름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으나 이때부터는 달라진다. 지난해 1월 청와대에서 정 씨와 대립 관계에 있는 박관천 행정관이 ‘정윤회 문건’을 작성했다. 이어 3월 한 주간지가 정 씨의 박지만 미행설과 함께 ‘정윤회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한다’고 보도했다. 6월에는 야권이 ‘만만회(박지만 이재만 정윤회)’가 비선 라인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연말에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면서 정 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문체부에서 출발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정 씨의 문체부 인사 개입설에 대해 “관련 없는 사람이 관여되어 있다고 얘기가 나온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체육계 비리를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는데 도대체 보고가 올라오지도 않고 진행이 안 됐다”면서 “따져보니까 역할을 해야 할 사람(문체부 국장 과장)이 안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 씨 쪽이 청와대에 압력을 행사해 담당자를 갈아 치웠다고 보고 있다. 양쪽 주장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진실이 무엇인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전후 사정을 알 수 있는 근거들은 있다. 지난해 1월 체육계 감사를 통해 강원승마협회 등에 대한 경고를 내렸으나 정 씨 딸과 관련된 것은 없었다. 여기서 정 씨의 영향력은 감지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체육계 비리가 불거진 직후인 2013년 8월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내놓은 성명이다. 이들은 “문체부가 아닌 감사원이 직접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체부와 체육단체는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돼 제대로 감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체육단체들과 오랜 관계를 이어온 문체부는 비리 조사의 적임자가 아니었다.

이후 문체부는 크게 흔들렸다. 조직이 사분오열되어 있다는 말이 들리고 다른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유진룡 전 장관은 정윤회 의혹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청와대를 향해 날렸다. 박 대통령은 ‘문화 융성’을 3대 국정과제로 삼으며 문체부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박 대통령과 문체부는 악연(惡緣)이었다.

자살한 태권도 관장의 유서에는 ‘설마 이 글의 파장이 그리 크진 않을 거란 생각이지만’이라는 글귀가 들어 있다. 그의 예견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큰 타격을 안겼다.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정치 상황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보면 이 문제에 관한 한 정윤회의 ‘국정 개입’까지 거론하는 것은 언론의 지나친 접근이다. 박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토로한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박근혜 정부의 불운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박근혜 대통령#문체부#악연#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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