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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양재천 너구리 ‘치킨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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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양재천 너구리 ‘치킨 습격사건’

김민 기자, 박성진 기자 , 손가인 기자입력 2015-01-22 03:00수정 2015-01-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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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늘어 먹이 부족해지자 한밤 산책로 출몰
아파트단지 쓰레기통까지 뒤져, 주민들 불안 호소… 감염 우려도
어두운 그림자 3개가 수풀 사이로 끈질기게 쫓아왔다. 겁이 났다. 발을 내딛는 속도를 높였다. 주변에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림자는 오직 목표 하나만 노렸다. 하는 수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림자도 따라 달렸다. 밝은 곳으로 나와 잠시 뒤돌아 그림자의 정체를 살폈다. 한참을 보니 너구리였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너구리 3마리가 눈앞에 있었다. 너구리들도 쫓는 것을 멈추고 고개만 내밀어 동태를 살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책로를 벗어나 차가 다니는 도로로 나갔다. 너구리들도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끝까지 따라왔다. ‘아차’ 싶었다. 문제는 치킨이었다. 슬며시 손에 들고 있던 치킨 박스를 내려놓았다. 지인들과 먹으려 했던 치킨을 너구리 3마리에게 빼앗긴 셈이다. 어쨌든 추격전은 그제야 끝났다.

기자가 10일 서울 강남구 양재천 산책로를 걷다 겪은 일이다. 양재천을 중심으로 출몰하는 너구리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행성인 너구리가 해가 지고 나면 먹이를 찾아 사람들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것에 익숙해진 일부 너구리는 사람을 피하지 않고 인근 아파트 단지에까지 침투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양재천은 1995년부터 진행된 서울시 생태하천 복원사업 중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 지역 너구리들은 다른 동식물들과 함께 생태계 복원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서식지 경쟁이 심해지고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너구리들은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음식물 쓰레기통 등을 뒤져 먹이를 구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강남소방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이달 21일까지 들어온 너구리 관련 신고 건수는 총 25건이다. 강남구에도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총 13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대부분 너구리가 나타나 무서우니 포획해 달라는 신고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임모 씨(31)는 “양재천 인근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데 너구리가 눈앞에 나타나 소리를 지르고 도망간 적이 있다”며 “평소 양재천에서 운동을 많이 하는데 너구리를 자꾸 마주치다 보니 아예 운동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네 살배기 딸을 둔 김모 씨(34)도 “혹시라도 병원균이 옮을까 걱정돼 딸을 데리고 양재천에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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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옴이나 진드기와 같은 피부병 또는 광견병이 옮을 수 있어 너구리와의 접촉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사람뿐 아니라 반려견이 물리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너구리가 갯과 동물이기 때문에 치사율이 매우 높은 광견병 같은 질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 일대에 서식하는 너구리 개체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조사했지만 정확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24시간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지 않는 이상 개체 수 및 서식지 파악은 불가능하다”며 “지역 주민들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잘하고 펜스를 설치하는 등 가능한 한 너구리와 접촉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성진 psjin@donga.com·김민·손가인 기자
#양재천#너구리#치킨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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