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에 이미 ‘WWW 시대’ 예견한 천재의 미디어아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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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백남준 9주기 맞아 ‘W3’전 등 기획전 줄이어

비디오조각 ‘톨스토이’(1995년). 백남준은 칭기즈칸, 모차르트, 히포크라테스 등 자신의 삶과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친 인물을 모티브로 여러 설치작품을 제작했다. 말년에 노자와 장자를 읽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는 등 절차탁마(磋琢磨)를 멈추지 않은 대문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비디오조각 ‘톨스토이’(1995년). 백남준은 칭기즈칸, 모차르트, 히포크라테스 등 자신의 삶과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친 인물을 모티브로 여러 설치작품을 제작했다. 말년에 노자와 장자를 읽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는 등 절차탁마(磋琢磨)를 멈추지 않은 대문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29일은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9번째 기일이다. 10주기를 한 해 앞두고 미술시장의 재조명 움직임이 벌써부터 심상찮다. 21일부터 3월 15일까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의 ‘W3’전을 신호탄으로 각 미술관과 갤러리의 백남준 관련 전시가 줄줄이 이어진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적잖은 중국 컬렉터들이 백남준의 작품에 대해 문의해왔다”며 “지난해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가 백남준의 장조카 켄 백 하쿠다 씨와 전시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 위상에 비해 저평가된 백남준 작품의 시장가치가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제 전시작인 ‘W3’(1994년). 1970년대에 인터넷 시대의 시각정보 흐름을 상상한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주제 전시작인 ‘W3’(1994년). 1970년대에 인터넷 시대의 시각정보 흐름을 상상한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구식 브라운관(음극선관·CRT) TV 64대를 전시실 3개 벽면에 도열해 붙인 ‘W3’는 최초 기획안이 나온 지 20년 뒤인 1994년 실물로 제작된 작품이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다다익선’ 이후 백남준의 의뢰를 받아 작품 제작을 도맡았던 전기설치전문가 이정성 씨는 “W3는 ‘WWW’, 월드와이드웹을 의미한다. 1970년대에 이미 인터넷 세상의 도래를 예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각각의 모니터에는 약 20분 길이의 영상이 돌아간다. 이웃한 모니터 사이에는 영상 재생에 프레임 3개분의 시차를 뒀다. 초당 30개 프레임이 돌아가는 영상이므로 0.1초의 시차다. 콜라주 편집된 영상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면서 영상 정보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시각화해 보여준다. 디지털 영상기술이 보편화한 지금 기준으로 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시스템이지만 아날로그 TV가 막 보급될 시점임을 돌이키면 놀라운 발상이다.

W3가 놓인 제일 안쪽 전시실 밖에는 1963년 독일 소도시 부퍼탈에서 열린 첫 개인전 전후로 백남준이 제작한 초기작 5점과 1990년대 비디오조각 6점을 배치했다. 죽 일렬로 늘어선 5점의 초기작은 얼핏 보면 초라하고 따분하다.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관심이 많은 관객이라면 갤러리 직원에게 작품 설명과 제어 시연을 요청하길 권한다. 작품으로 감상하기보다는 평범한 영상 신호를 왜곡하고 재구성하는 방법 찾기에 골몰했던 서른 살 열혈 작가가 남긴 야릇한 실험의 흔적들로 보는 것이 좋다.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는 29일부터 6월 21일까지 5개 테마의 ‘TV는 TV다’ 백남준 추모 기획전을 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20세기 미디어작가 박현기전(27일∼5월 25일)과 3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백남준의 제자 빌 비올라 개인전도 백남준 10주기를 앞둔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 안팎에서 추진 중인 종로구 창신동 예술문화거리 조성 계획은 백남준과 박수근의 옛집을 축으로 삼았다.

일찌감치 불기 시작한 ‘백남준 바람’의 실체를 보다 조밀하게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W3’전에 대해서는 작가의 진면목을 찬찬히 조명한 기획전이라기보다는 한 발 앞서 분위기를 선점하려 한 움직임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시장가치의 재평가 못잖게 백남준 10주기를 계기로 삼아 기획하고 있는 공공 부문의 장기적 문화 프로그램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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