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남의 말 듣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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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오피니언팀장
이진 오피니언팀장
“우주는 그럼 다 상대적인가요?”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상대성이론이 말하는 바입니다.”

며칠 전 한 과학잡지가 개최한 ‘아인슈타인 카페’에서 나왔던 질문과 답변이다. 토크쇼 형식의 행사에서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가 먼저 일반상대성이론을 짧게 강의했다. 청중의 대부분을 차지한 중고교생들은 두 과학자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해 들었다. 그러고는 대화 시간이 되자 질문을 쏟아냈다.

‘차원은 무엇인가요?’ ‘시간에서도 에너지가 보존되나요?’ ‘블랙홀에 끌려들어간 빛은 멈춰 있나요?’

과학에 문외한인 나는 이미 강의 도중에 이해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렸다. 올해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지 100년이 된다는 말만 알아들었다. 그러니 이런 질문들은 나 같은 사람이 속한 차원에서는 알 수 없었다. 온전한 생각이 보존되기는커녕 사고 작용이 완전히 멈췄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카페 막바지에 간신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두 사람이 어떻게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지 설명하는 때였다. 오 선임연구원은 어린 시절부터 별이 좋았다고 했다. 월식이 있는 날이면 밤을 새워 달이 변하는 과정을 옮겨 그린 뒤 다음 날 바로 등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다 알지는 못해도 책을 보고, 한 해 한 해 지나며 더 이해하게 되고, 몰랐던 것을 깨달아 가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의 저자이자 ‘스타 과학자’로 꼽히는 이 교수는 초등학생일 때 문방구에서 시험관을 사서 이런저런 것을 넣어 끓여 보는 것을 즐겨 했다고 떠올렸다. 트랜지스터를 납땜질해 직접 라디오를 만들어 봤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학자가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과학자가 되기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듣고 그렇구나 하면 안 되고 자신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할 때는 ‘마땅히 그래야 하겠지’라고 공감했다. 하지만 공감은 이내 착잡함으로 바뀌었다. “‘과학자 따위가 되다니’라는 주변의 공격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 순간이 감정의 변곡점이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두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나는 2년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최한 교육정책포럼이었다. 지방대 발전 방안이 주제였다.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해 지방대가 살아남으려면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옆자리의 한 지방대 교수가 공박에 가까운 반론을 제기해 난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하나는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자를 4명이나 배출한 대구의 한 고교에 관한 기사였다. 4명 모두 의대를 지원한다고 밝혀 더 눈길이 갔었다.

한국은 뛰어난 이과 학생들이 특정 분야에 몰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지 오래됐다. 서울대 자연계열 수시모집 합격자들이 다른 대학 의대로 뭉텅 빠져나가는 현상은 올해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과학자가 되겠다고 하면 장려하기보다 ‘왜 고생을 사서 할까’라고 의아해한다. 이러니 지방대 자연계열은 이중고로 신음할 수밖에 없다. 지방 공립대인 경상대도 수의예과 경쟁률은 늘 최고다.

이 교수는 끝으로 “우리 대학에서 물리교육과 경쟁률이 가장 낮다. (역으로 생각하면) 블루오션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과학자 지망생들이 먼저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로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호기심을 잃지 말고 연구에 매달리라는 격려보다 남의 말에 귀 닫으라고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진 오피니언팀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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