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몰래 증세’ 하려다 저출산·고령화 대책 역행한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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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국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자주 세제가 개편돼서야 국민이 어떻게 세제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해 결혼·출산 장려세제와 여성 경제활동 참여 장려세제 등을 정책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번 연말정산 과정에서 터진 ‘13월의 세금폭탄’은 저출산·고령화 대응과는 정확히 거꾸로 간 세금정책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제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녀가 많은 가정에 돌아가는 혜택이 적고, 노후 대비에 대해 세액공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문제를 시인했다. 그런데도 안종범 경제수석이 일종의 ‘착시 현상’인 것처럼 청와대 브리핑을 열고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이해가 잘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잘못된 보고를 받았는지, 세제개편이 잘못됐음을 모르는지 의문이다.

다자녀 및 연금저축 공제를 줄이고 맞벌이 여성에게 유일한 혜택인 부녀자 공제를 없앤 것이 대표적인 개악(改惡)이다. 고용률 70%의 목표를 내걸고 여성 인력 활용을 강조하면서 부녀자 공제는 종합소득 3000만 원이 넘을 경우 아예 없애 맞벌이 여성들은 속은 기분이 든다. 6세 이하 자녀당 100만 원씩의 자녀 양육비 공제, 출산 장려를 위한 다자녀 추가 공제, 출산 공제도 사라졌으니 저출산 문제 해결은 포기한 정부 같다. 직장인들한테 세금 더 뜯어 전업주부에게도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는 한심한 정부라고 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특히 의료비와 교육비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아이들 키우는 30, 40대 직장인 부담이 커졌다. 연금저축 수익률이 낮아도 세제 혜택 때문에 가입한 직장인이 많았는데 그것도 대폭 줄였으니 노후 대비는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박 대통령은 무상복지와 관련해 증세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증세는 없다”고 외쳐 왔다.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세수(稅收) 증대에 눈먼 정부가 대통령의 공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몰래 거위털 뽑듯 중산층 직장인의 세금을 더 긁어내다 벌어진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도 정부는 엉터리 시뮬레이션과 말 바꾸기 대응으로 분노를 키웠다. 국민에게 민감한 세금제도를 졸속으로 바꿨다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둔 2012년 정부와 새누리당이 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원천징수액을 줄임으로써 월급이 늘어난 것처럼 ‘정치적 꼼수’를 쓴 것은 국민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과 법 제도에 일관성이 없으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세금에 대한 신뢰를 잃고 조세 저항을 부르면 정권도 위태로울 수 있다. 다자녀 가정에는 세금을 더 물리면서 무상보육에 9조 원을 퍼붓는 앞뒤 못 가리는 정부가 결국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실 어린이집을 양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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