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고양이 태운 아줌마로 몰려…” 무서운 감시자 ‘스몰브라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1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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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임모 씨(53·여)는 아직도 주문 전화를 받지 못한다. 또 다시 욕설이 쏟아지지 않을까 두려워서다. 지난 7일 임 씨 가게엔 익명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임 씨는 밤사이 ‘고양이를 불태운 중국집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전날 남편과 다툰 뒤 술김에 그의 패딩 점퍼를 태운 게 화근이었다. 불타는 옷을 고양이로 착각한 한 여성이 그 장면을 촬영했고, 그녀의 딸이 SNS에 동영상을 올리자 조회수는 나흘 만에 100만 회를 넘었다. 동물보호단체는 임 씨를 동물 학대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임 씨는 “‘사람도 그렇게 태우라’는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도 들었다. 이틀이나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지금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무책임한 고발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시대’로 접어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과거엔 국가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이 정보를 통제하며 ‘빅 브라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스마트폰과 SNS 사용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감시자의 권력을 갖게 됐다.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 대상이 되는 ‘스몰 브라더’ 시대의 도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큰 권력에 억눌렸던 개인들이 ‘나도 정의를 구현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소영웅주의에 빠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이나 부정확한 정보가 더해지면서 애꿎은 피해자를 만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 폭행 사건이 터지자 누리꾼들은 재빨리 가해자 신상털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남성이 보육교사의 남편으로 지목돼 ‘SNS 테러’를 당했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자기만 만족하는 정의실현은 위험하다. 사람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정의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신촌역 고등학생을 제압한 아저씨’라는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동영상 속 젊은 남성은 어른에게 대드는 ‘무례한 10대’로 매도됐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이 사건은 중년 남성이 20대 청년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 시작된 쌍방 폭행으로 밝혀졌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대로 세상을 바꿔가려는 경향이 있다. 윗사람에게 대드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신념을 어떻게든 확산시켜 잘못을 응징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사실관계를 일부러 왜곡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사이버상의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박 교수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분별한 마녀사냥을 일삼는 행위에는 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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