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다중인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켰는데 드라마 한 편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은 ‘킬미 힐미’.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다. 다중인격장애는 한 사람의 정신 속에 여러 인격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의학용어로는 ‘해리성(解離性) 정체장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2중 3중을 넘어 무려 7중인격의 소유자다. 한 사람이 7개의 인격을 갖고 있는 셈이다. 조만간 이와 비슷한 다중인격장애 환자를 앞세운 TV 드라마가 또 시작된다. 다중인격의 ‘원조’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은 매년 무대에 올려질 정도로 인기다. 몇 해 전 한 개그프로그램의 ‘다중이’라는 코너도 인기가 높았다.

일반적으로 제2, 제3의 인격은 원래 인격과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평소 얌전하고 소극적이라면 또 다른 인격은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때로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띤다. 정신의학적으로 이런 다중인격 환자를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그저 영화 드라마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던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땅콩 회항’ ‘백화점 모녀 갑질’ 논란 때만 해도 그저 부유층의 일탈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한 40대 가장, 부인의 전 남편 가족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다 두 명을 죽인 김상훈, 반찬을 남긴 네 살배기 어린이에게 ‘핵 펀치’를 날린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보면서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부럽지 않은 위치의 사람들이 갑자기 공공장소에서 막말과 욕설을 서슴지 않고 평범한 가장이 특별한 이유 없이 가족의 목을 조르는 상황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때 자신을 ‘삼촌’이라고 불렀던 의붓딸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고 흉기로 살해한 뒤 “나도 피해자”라고 외치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이들이 다중인격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신의학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사회적 다중인격’은 의심할 만하다. 자신의 존재나 지위가 흔들리거나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할 때 마치 딴사람처럼 평소와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을 낸 학자들도 있다. 더글러스 T 켄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와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미네소타대 마케팅 겸 심리학과 교수는 ‘이성의 동물’이라는 책에서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다중인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존과 진화를 위해 부분적으로 여러 자아가 만들어졌고 때때로 이 자아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긴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욱’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7개까지는 아니어도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며 이중인격, 3중인격을 고민하는 사람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성(理性)을 앞세워 참는다. 아니면 대체재(예를 들어 음주)를 통해 풀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힘없는 상대방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이들이 우리의 공분(公憤)을 사는 이유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다중인격#킬미 힐미#인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