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질 한번에… 눈녹듯 마음의 벽 사르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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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주제는 ‘배려’]<11>내집 앞 눈, 내가 치우자

치우지 않은 눈이 얼어붙으면서 운동화를 신고도 지나가기 어려워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골목길의 19일 아침 모습. 윤수민 기자 soom@donga.com
치우지 않은 눈이 얼어붙으면서 운동화를 신고도 지나가기 어려워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골목길의 19일 아침 모습. 윤수민 기자 soom@donga.com
18일 서울에 내린 눈은 5.1cm였고 수도권과 강원 등지에도 눈이 내렸다. 기온이 오르고 비가 내리면서 녹았던 눈은 다음 날 새벽 얼어붙어 곳곳에 빙판길을 만들었다.

1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영신여고 인근 주택가 낮은 언덕길. 양옆에 차량들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은 얼어붙어 있었다. 운동화를 신은 청년도 넘어지지 않았을 뿐 여러 차례 미끄러지는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빙판이 된 주변을 지나던 30대 여성은 염화칼슘이 뿌려져 얼진 않았지만 질척거리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같은 시각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경비원이 있는 빌라 주변은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 대부분은 눈이 녹아 질퍽거리거나 빙판이 돼 있었다.

겨울철 심심찮게 마주쳐야 하는 눈 쌓이고 얼어붙은 출근길.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빌라에 사는 원모 씨(27)는 “눈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내 일은 아닌 것 같아 치우려고 마음먹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리인이 없는 빌라와 단독주택 주변은 주민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눈을 치워주지 않는다. 모두가 원 씨처럼 생각해서는 눈이 올 때마다 ‘빙판 출근’을 각오해야 한다. 이날 아침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던 곳 뒤에 숨어 있던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18일 눈이 내릴 때 중계동 약수빌라 앞의 눈을 치웠다는 주민 계원갑 씨(54)는 “우리 집 앞이니까 치운다”며 “눈이 쌓이면 모두가 불편하니까 평소에도 나서서 치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집 앞은 내가 치운다’는 생각을 갖는 것 이상의 해법이 없는 셈이다.

관리인이 있어도 너나 없는 눈 치우기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대개의 아파트 단지는 경비원 한두 명이 두세 동씩 관리하다 보니 혼자서는 출근시간까지 말끔하게 눈을 치워놓기 어렵다. 눈 내린 날 5분만 빨리 현관을 나서 눈 치우는 데 손을 보태고 출근한다면 틀림없이 뒷사람은 조금 더 편한 출근길을 맞이하고 아이들은 미끄러지지 않고 어린이집에 갈 수 있다.

점포가 즐비한 상가를 보면, 딱 자기 가게 앞만 눈을 치우고 옆 가게 앞길엔 손도 대지 않은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치우지 않은 것보다야 낫지만 ‘내 가게에 들어올 내 손님’만 챙길 뿐 옆 가게 앞을 지나갈 내 손님조차 배려하지 않는 듯하다. 눈 치운 공간이나 치워지지 않은 공간 모두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다. 역으로 생각하면 아파트든 상가든 눈 치울 때 경계를 허물고 이웃까지 배려한다면 단단하기만 했던 인간관계의 장벽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을 법하다.

전문가들은 ‘내 집 앞’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이를 넘어 이웃까지 배려하는 노력이 우리 사회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내 집 앞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은 기초적인 책임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비질#눈#집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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