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미리 알려줘… 짬짜미 평가인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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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처음부터 다시]
“형식적 평가… 당일만 잘하면 돼”, 1500만원 들이면 대부분 ‘우수’

“평가인증을 받는 데 최소 1500만 원은 들 것 같은데요.”

경기 고양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요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의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준비하고 있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설, 교재, 놀이기구를 평가 기준에 맞추려면 상당한 돈이 든다. 현재도 격무에 지쳐 있는 보육교사들에게 한 달 전부터 평가인증 준비 때문에 추가 야근을 시키고 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아질 상황이 아니다. 폭력 사고가 일어난 어린이집들이 평가인증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가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평가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육교사들이 힘들어서 관두는 경우도 있다”며 “평가 당일 잘 보이기 위해 돈을 들이는 형식적인 평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천 K어린이집 사고 이후 정부의 어린이집 인증평가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평가 절차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은 평가를 받고 싶은 어린이집만 평가인증을 받는다. 한국보육진흥원에 신청을 하고 2주 전에 대략적인 일정을 통보받는다. 이럴 경우 어린이집은 평가 지표에 맞춰 충분히 준비한 뒤 평가를 받는다. 인증을 받으면 1년에 100만 원가량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 내년 하반기부터 평가가 의무화될 예정이지만 현장평가 일정을 사전에 알려주는 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창경 한국보육교직원 총연합회 공동대표는 “현 평가인증은 보여주기식으로 흘러 어린이집에 평가 때만 교보재를 빌려주는 업체까지 있는 실정이다”라며 “불시점검 등 평소 모습을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가 항목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것도 문제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어린이집은 낮잠 시간에 아이들이 깨어 있다는 이유로 감점을 받았다. 아이의 발육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어린이집의 B 원장은 “잠을 강요하면 아이에게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다. 군대도 아니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안 잔다고 해서 나쁜 어린이집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어린이집#평가인증#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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