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노동시장 개혁, 정부 성의 보이면 투쟁 위한 투쟁 않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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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과 관련된 입장과 방향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성의를 보인다면 투쟁을 위한 투쟁은 하지 않겠다”며 “민주노총에 노사정위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과 관련된 입장과 방향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성의를 보인다면 투쟁을 위한 투쟁은 하지 않겠다”며 “민주노총에 노사정위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지난해 12월 23일 노사정(勞使政)이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한 2대 원칙과 14개 세부 과제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동반자적, 공동체적 시각에서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나눈다는 원칙 아래 비정규직 처우 개선,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과 관련된 합의안을 올해 3월까지 이끌어 내기로 전격 합의한 것이다. 노사정이 노동시장을 개혁하자고 합의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 ‘2·6 대타협’(정리해고 법제화, 파견법 제정 등) 이후 16년 만이다. 1999년 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고, 노사정위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노동시장의 낡은 구조는 그대로 유지돼왔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졌고 통상임금과 간접고용을 둘러싼 노사갈등도 심해졌다. 이에 정부는 올해를 ‘골든타임’으로 보고 노사정 대타협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반발을 수습해 노사정 합의를 이끌고, 구조 개혁 논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56)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노동계의 구조 개혁 방향과 노사정 대타협 가능성 등을 듣기 위해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

대통령, 가이드라인 만들면 안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본 느낌은 어떠했나.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다시 한 번 강조했는데….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다. 인적 쇄신을 밝히지 않았고 경제민주화 등 그동안의 공약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실망했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단은 맞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솔선수범이다. 요즘은 중국도 법치(法治)를 한다. 법치라는 건 기본적으로 국민 설득인데, 리더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무원연금 개혁도 고위공무원들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내용 없이 강제로 지시하면 다 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도 박 대통령은 노사정 논의와 대타협에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줬다.

“그간 노사정위가 많은 일을 하긴 했다. 신뢰를 가지고 양보와 타협을 하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행태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 경제부총리,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마디씩 하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들러리로 서서 합의만 해주는 거라면 하지 않겠다. 한국노총은 외환위기 때부터 나라와 경제를 걱정했다. 임금도 삭감하고 공기업도 개혁하고 양보도 많이 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가혹한 조직 분열뿐이었다. 일단 우리도 안을 냈으니 인내를 가지고 협상하겠다. 다만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한국의 정규직이 정말로 ‘과보호’되고 있는가? 지난해에만 금융권에서 5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어느 조직이든지 성과가 나지 않은 직원은 마음대로 내보낼 수 있다. 지금도 회사 입맛대로 할 수 있는데 정규직 과보호라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실질임금과 최저임금부터 올려서 소비를 늘려야 내수가 활성화될 수 있다. 대기업들도 유보금만 쌓아두지 말고 고용창출 많이 하고, 노동자도 사외이사 등을 통해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노동자도 회사를 이해하고, 경영도 책임지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물론 처우가 좋은 정규직들도 양보할 필요가 있다. 다만 ‘노사 자치주의’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고 노사에 맡겨놓으면 알아서 다 한다. 우리는 임금피크제를 2006년에 도입했다. 지금도 많은 사업장이 정규직 임금은 적게 올리고 비정규직 임금을 많이 올리고 있다.”
파견업종 확대 수용할 수 없어

―노동시장 구조 개혁 논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노총은 노총답게 행동하자는 것이 개인적인 철학이다. 노동자들이 떳떳하게 ‘조끼’를 입고 다니는 시대가 돼야 한다. 나는 금융노조위원장 출신이다. 과거에 한국을 대표하던 시중은행 6개가 모두 사라졌다. 그때는 노조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일순간에 깨졌다. 그렇게 천지가 개벽하는 모습을 봤는데 노동계가 머리띠 매고 투쟁만 해서 되겠는가. 우리도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시청 앞 광장에 10만 명 모아놓고 아무리 평화적으로 집회를 해도 국민은 관심 없다. 물론 정권과 자본이 노동계를 압박하고 뒤통수를 치는 일도 많다. 협상을 하다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저항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성의를 보이면서 대화가 잘 이뤄져 명분이 서고, 서로의 입장을 세워주는 상황이라면 투쟁을 위한 투쟁은 하지 않겠다.”

―정부는 늦어도 3월까지 합의를 하겠다고 한다.

“골든타임 얘기를 많이 하는데, 선거가 없으니까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민주적 절차와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과제를 다 합의할 수 없다면 몇 개만 합의하고 나머지는 국회로 넘기는 방법도 있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도 4년으로 늘리되 그 이후에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항을 법으로 만들면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물론 4년 전에 다 해고되겠지만…. 파견 업종 확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 비정규직으로 4년씩 일하고 나이가 들었는데도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으면 결국 간접고용(파견)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비정규 공화국이 되는 것만큼은 막을 것이다.”

―고용 기간이 늘어나면 숙련도가 높아져서 정규직 전환이 촉진된다는 견해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숙련도가 높아졌다고 치자. 그래도 정규직으로 채용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한 공공기관의 사외이사를 했는데 인턴을 300∼400명씩 뽑아서 그중 정규직은 10명만 뽑더라. 고용기간을 늘린다고 해서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증명되고 있다. 자본수익률은 계속 증가하는데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이다. 그 수익이 어디서 나오나. 비정규직 쓰고 외주 주고, 임금 착취해서 나오는 것 아닌가.”

―정부는 비정규직에게 퇴직금, 이직수당을 주고 노조에 차별시정권도 주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에게까지 퇴직금을 줄 수 있는 여력이 얼마나 있겠나. 중소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당근 몇 개만 줄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해법을 내놔야 한다. 비정규직으로 2년씩 근무했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게 노동자들의 호소다. 고용 기간을 늘리려면 4년이 아니라 차라리 10년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그 전에 해고할 수 없도록 해야 하겠지만. 특히 차별시정권은 상급단체에도 줘야 한다. 상급단체 전임자들은 노사협상 경험이 많다. 용평리조트 노사분쟁도 산별대표가 해결했다.”
노조도 이기주의 탈피해야

―정부 설문조사에서는 비정규직도 기간 연장에 찬성하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우리 설문조사 결과는 정반대다. 그래서 노사정위에서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문항도 노사정이 같이 검토해서 외부 전문기관에 맡길 것이다.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도 말했지만 상시 지속적 업무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일 수 있다. 정부와 경영계 생각은 우리와 정반대겠지만.”

―정부는 저(低)성과자 해고(일반해고) 요건도 명확히 하자고 한다.

“말이나 글을 해석할 때도 직역보다는 의역이 범위를 넓히지 않나.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여파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KT는 8000명이 넘는 인원을 명예퇴직시켰다. 명예퇴직을 가장한 해고다. 지금도 성과가 낮은 직원은 갑자기 발령을 내거나 귀양을 보낸다. 회사가 하고 싶으면 다 할 수 있다. 해고 요건을 명확하게 한다면 그 절차를 거칠 경우 마음대로 해고해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1982년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임금인상 억제,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강화 등에 관한 노사정 대타협) 같은 합의가 가능하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한가.

“네덜란드는 실업수당, 연금 등 사회 안전망이 충분한 상태에서 대타협을 했다. 우리는 해고되면 갈 데가 없고 실업급여가 전부다. 덴마크는 노사정이 모든 현안을 협의한다. 독일 총리도 큰 현안이 생기면 노총 위원장과 제일 먼저 협의한다. 외국을 나가도 노총 위원장을 대동해서 나간다. 우리는 소 닭 보듯 하지 않나.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지려면 일단 노사, 노정 간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민노총에 노사정위 참여 요청할 것

―노조조직률도 10%를 위협받고, 한국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도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노조가 정규직 이익만을 대변하고, 이기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안다. 조직률 하락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이 늘다 보니 조직률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비정규직도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노조를 조직하면 해고해버리지 않나. 사용자들의 통제가 워낙 심하다. 다만 우리도 이기주의를 탈피해야 한다. 나도 현장 간부들에게 골프를 치지 말라고 늘 강조한다. 이주노동자들까지 보호하면서 중간지대에 있는 조직들을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 일본 노총은 ‘조직특공대’까지 만들어서 조직을 확대한다고 하더라. 우리도 조직 확대에 사활을 걸겠다.”

―민노총의 새 집행부가 선출됐다. 역사상 첫 조합원 직접선거로 선출된 집행부다.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인가.

“민노총은 동업자다. 동심동덕(同心同德)의 마음을 갖고 있다. 지금이 이데올로기 논쟁을 하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을 만나면 노사정위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겠다. 들어와서 하다가 안 되면 연대투쟁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득하겠다. 민노총이 들어와 같이 싸우고 협의하면 국민 호응도 받을 수 있다. 노동시장 특위에 사용자단체는 3곳(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이나 있는데 노동계는 한국노총 하나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자주 민노총을 찾아가 설득하길 바란다. 장기적으로는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하나로 통합해서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 김동만 위원장은 >

마산상고 졸업(한국체대 중퇴)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입행(1978년 4월)
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2006년 5월∼2008년 1월)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2008년 2월∼2013년 10월)
제25대 한국노총 위원장(2014년 1월∼현재)

인터뷰=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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